바둑의 역사는 대략 2500년 정도라고 한다. 삼국지에서 독화살을 맞은 관우가 팔의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받으면서도 태연히 바둑을 두는 장면이 210년 경이고, 고구려 장수왕이 승려 도림을 보내 백제의 개로왕을 “바둑에 빠져 나라를 잃은 임금”으로 만든 것이 460년쯤의 일이다. 다른 스포츠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바둑도 한두 사람의 천재적 스타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로 이어진 스타들 덕분에 중국과 세계 제일을 다투고 있지만, 생활체육으로써 대중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엘리트주의의 폐해라는 지적도 있다. 2018년 바둑 진흥법이 제정되고 전국체전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등 두뇌 스포츠인 바둑이 ‘게임’으로 주목받게 된 데에는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대결에서 승리하며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 큰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바둑만큼은 인공지능이 도전하기에는 버거운 분야로 여겨졌다.
바둑은 두 명의 대국자가 가로와 세로로 그어져 있는 19줄의 361개 교차점에 흑과 백의 돌을 번갈아 가며 놓는 전략게임으로 규칙은 간단하지만 경기가 전개되는 상황은 엄청나게 복잡하다. 체스의 경우 한 경기를 둘 때 고려해야 하는 경우의 수는 보통 10의 120승으로 계산되는 반면 바둑은 경우의 수가 250의 150승으로 이것은 우주 전체의 원자 숫자보다 더 많은 조합과 배열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는데 딥블루의 승리 후, 뉴욕타임스는 체스 챔피언을 이긴 높이 2미터 무게 1.4톤인 200만 불짜리 “생각하는 기계”의 엄청난 하드웨어와 용량에 의한 “무식한 방법”이 바둑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바둑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른다.”라고 예상했었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채 되지 않은 2016년 3월,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최고수를 꺾는 광경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아마도 바둑 史에, 그리고 인공지능의 역사에 가장 극적인 사건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다. 알파고에 패한 이세돌이 은퇴를 선언하며 바둑은 도(道)와 예(禮)인줄 알았는데 인공지능이 출현하면서 바둑을 더 이상 도와 예로 볼 수 없게 되었다며 “이제 바둑은 게임이 됐다”라고 아쉬워했다지만 무엇이든 경지에 이르면 예술이 되는 것이다. 바둑은 게임이고 그냥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임요환이 게이머이듯이 이세돌도 프로게이머일 뿐이다.
함양이 낳은 “프로게이머” 사초(史楚) 노석영선생은 구한말 조선의 국수(國手)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30세가 지나서야 바둑에 정진해 조선 최고수가 되었는데 빼어난 바둑 실력과 기행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며 전국을 유랑하며 바둑을 즐기다 일생을 마쳤다. 2008년 선생의 고향에 사적비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며 시작한 노사초배 전국 바둑대회가 올해로 13회째인데 전국의 500만 바둑 동호인들의 여름 끝자락을 뜨겁게 달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가 되었다. 지난해 함양산삼팀이 선전하다가 3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던 대한바둑협회가 주관하는 내셔널 바둑리그가 전국에서 16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막을 올렸는데 3라운드 현재 우리 함양팀이 단독 선두를 질주하며 우승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함양은 바둑의 고장이다. 바둑은 선비의 고을 함양에 잘 어울리는 스포츠이고 문화다. 노사초선생의 생가가 있는 지곡면 개평마을이 우리나라 바둑의 성지로 자리 잡고 바둑발전을 위한 이런저런 구상들이 군민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좋은 결실을 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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