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마당 웅덩이 메우고 배수로 손보려고 자갈 한 차, 강 모레 한 차 그리고 마사토 한 차 부려놓았습니다. 놀기에도 좋은 날씨네요. 영화도 보러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만 거리두기가 발목을 잡습니다. 책읽기에도 좋은 날씨입니다. 엊그제 도서관에서 따끈따끈한 신간 다섯 권 빌려와 조금씩 뜯어먹고 있습니다. 음악듣기에도 좋은 날씨입니다. 요즘 말러랑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맛난 거 먹으러 가기에도 좋은 날씨지요. 엊그제는 아내랑 읍에 가서 국수 먹었답니다. 양념장과 땡초 넣고 비벼 먹다가 육수를 부어 두 가지로 먹는 국수였네요. 날씨가 좋으니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데 뭘 해도 다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전엔 호미와 괭이 들고 텃밭을 정리했습니다. 부부가 심어먹을 손바닥 보다 작은 텃밭 만드는데 반나절 꼬박 걸리네요. 텃밭 한편에 피어있는 배추꽃을 꺾어 물병에 옮겨두고 호미질 괭이질하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점심을 준비하며 “내가 샐러드에 뭐 넣었게?”하고 헤헤 웃습니다. “글쎄? 뭘 넣었는데?” “알아 맞춰봐~” 오늘 텃밭 정리하면서 노획한 민들레, 시금치에 파프리카가 보이고... 빨갛고 말랑한 곶감이 보입니다. “뭐해? 먹기 전에 사진 찍어 올려야지~” 곶감 관련된 건 항상 사진 찍어 올리는 농부 맘을 아내가 알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그래~ 당근이지~”하고 한 컷 찍습니다. 먹어보니 곶감이 젤 맛있네요. 근데 올해는 뭘 심어볼까요? 보름 전에 상추를 먼저 심었는데 개가 오며가며 밟아버려 상추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냉해 입을 염려는 안 해도 될 것 같으니 일단 호박 두 개 가지 한개, 고추 다섯 개 심어놓아야겠습니다. 나머지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애호박 부쳐 먹을 생각하니 미리 군침이 돕니다.매년 이맘 때 찌르레기가 둥지를 틉니다. 올해는 두 쌍이 보이네요. 한 쌍은 덕장 처마에 또 한 쌍은 정자 처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푸라기 같은 것을 한창 물어 나르며 둥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눈치 빠르고 영리한 찌르레기들은 딴전 피웁니다. 둥지 안 짓는 척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맙소사~이게 웬일입니까? 찌르레기 네 마리 중 한 마리를 수리가 잡았네요. 찌르레기 한 마리가 수리 발 아래 있습니다. 바쁜 일 잠시 처리하고 다시 와보니 이 녀석이 잡은 새를 어딘가 감추고 딴전 부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엔 두더지 큼직한 넘을 잡아놓았더군요. 징그러워 삽에 떠서 멀리 덤불속에 던져버렸는데 이번엔 수리가 선수 쳤습니다. 도대체 어디 숨겼을까? 수리는 날짐승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고양이가 어떻게 잡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봄엔 뽕나무 둥지에서 막 이소하는 물까치 새끼를 꼬리와 수리가 잡아채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박새나 붉은머리 오목눈이도 가끔 잡습니다. 그런데 항상 높은 곳으로 날아다니는 찌르레기를 수리가 어떻게 잡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건 수리수리마수리 주문으로 될 일이 아니데 말입니다. 수리가 독수리도 아니고 말입니다. 수리가 브라키오사우루스도 아니고 말입니다. 어쨌든 수리는 이 통통한 찌르레기를 잡고 기분이 엄청 좋았나 봅니다. 욕심 많은 집사가 탐을 낼까봐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고 혼자 꿀꺽한 것이 미안했는지 현관 앞에 집사에게 주는 우정의 선물로 작은 쥐를 또 한 마리 잡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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