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22일은 51번째 ‘지구의 날’이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생각하며 밤 8시부터 10분간 소등하는 행사가 전국적으로 있었다. 몇몇 지인들은 소등에 동참하며 인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필자는 출타 관계로 10분간 시동을 끄고 자동차를 멈추는 것으로 함께 동참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소등으로 지구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짧은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 반문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10분간 소등으로 얼마의 탄소를 줄일 수 있을까?”, “지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우리는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알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10분간의 소등으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10분의 소등을 통한 “느낌과 결단”이다. 10분간 불을 끈다고 해서 지구의 아픔이 느껴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의 아픔이 아니라 자신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의 추억과 낭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10분간의 어둠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경험해야 하는 것은 “환경 감수성”이다. 불이 꺼진 캄캄한 10분, 불편한 10분을 통해 지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생각하는 시작 점(출발 점)이 되어야 한다. 환경 감수성이란 “환경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환경을 통한 심리적 안정과 행복, 환경의 상황에 대한 동정과 연민,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와 분노, 환경 보전 의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정의적, 행동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를 느끼고 인식하는 것 이다. 우리는 지금 다양한 기후 변화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해빙 문제, 기상이변 등 다양한 신호로 지구는 몸짓하고 있다. 지구의 이런 몸짓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라 부정적인 신호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구를 위한 우리의 변화는 거북이처럼 느리기만 하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환경 변화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환경 자폐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경교사 신경준 선생은 환경교육을 (1단계는 환경 감수성, 2단계는 환경지식, 3단계는 시스템 사고, 4단계는 환경정의, 5단계는 행동과 실천 이라고 말한다. 총 다섯 단계 환경교육의 출발점이 “환경 감수성”이다. 이 말은 환경교육의 출발은 환경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하는 환경을 느낄 수 있는 환경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환경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다. 변해가는 환경을 보면서도 아무 느낌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환경지식을 가르쳐도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 앞에 놓인 환경 문제는 “환경 감수성”을 높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감수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작은 변화에도 마음으로 행동으로 반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환경 감수성을 높일 수 있을까? 답은 “관심”이다. 시인 나태주 선생은 “풀 꽃”이란 짧은 작품을 통해 관심의 표현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우리 주변의 환경을 자세히 보고, 오래 지켜보는 관심이 우리의 환경 감수성을 높인다. 그럼 시선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 돌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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