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 같은 날씨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알맞은 기온에 공기는 미세먼지 하나 없고 맑으니 숨쉬기 편하네요. 요즘은 조금 건조하다 싶으면 농비가 때맞춰 내려주어 감나무 새순이 예쁘게 나옵니다. 이런 날을 기다렸다는 듯 꽃들은 한꺼번에 피고 있습니다. 라일락, 메이플, 보리수, 모과, 명자, 철쭉까지 다투어 피고 장미도 벌어지려고 서둘러 꽃몽우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괜히 맘만 설레게 했던 벚꽃은 지고 겹벚이 이어 핍니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이 겹벚이 피기를 기다립니다. 겹벚이 피어야 화단에 꽃모종을 안심하고 옮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맘 때 피는 끈끈이 대나물이나 겹벚이 피기 전에 옮기면 꽃샘추위로 여린 모종이 얼 수도 있습니다. 나는 항상 앞마당 돌담 앞에 겹벚이 터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화원에 가서 꽃모종을 업어오고 지난해 갈무리했던 꽃씨도 뿌린답니다. 화창한 봄날 수리가 민들레밭에서 꼬리를 잔뜩 세우고 당당하게 걷는 뒤태가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보입니다. 하늘을 찌르는 꼬리가 기분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유머러스한 모습을 찰칵해서 블로그에 올렸더니 공룡DNA가 변이를 일으켜 피부가 털로 된 모양이라는 댓글부터 진짠줄 알고 놀랐다는 댓글까지 즐겁고 유쾌한 글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답니다. 실체를 공개하자면 이 녀석은 거세냥 부랄리스사우루스일 뿐인데 말입니다. 지난 휴일에는 아내랑 뒷산에 봄나물 캐러 가는데 이 브라키오사우루슨지 부랄리스사우루슨지 좌우지간 느긋한 사우루스 한 녀석이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녔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쪄 덩치만 더 키우면 옷 입은 것까지 영낙없는 호랑이라며 아내랑 하하호호 웃었네요. 따라다니다 졸리면 옆으로 누워 늘어지게 자기도 하고 그야말로 이 세상 시간을 다 가진 듯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사전에 개는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신으로 생각하는데 고양이는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 자신을 신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개와 고양이를 처음 키워본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언입니다. 우리 집 양치기 개인 사랑이와 오디 그리고 길냥이 출신 수리, 서리, 꼬리를 보면 이 명언의 풀이를 보는 듯해서 미소가 지어집니다. 사랑이와 오디는 밥 먹을 때는 물론이고 간혹 간식이라도 주면 꼬리를 선풍기처럼 돌리며 고마워하는데 이 고상한 척하는 고양이들은 집사가 식사를 차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전혀 고마워하는 기색은 보여주지 않고 거들먹거리기만 합니다. 게다가 2년째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아직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꼬리는 솔직히 유감스럽습니다. 이쯤하면 이제 다가와서 발목에 목덜미라도 한번 비벼줄 만도 한데 여전히 곁을 주지 않습니다. 개를 키운다고 하면 고양이는 모신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나는 애교 많고 충직한 양치기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상한 척 거들먹거리는 고양이 세 마리를 모시고 있습니다. 개는 우정 어린 눈길로 고개를 치켜들고 꼬리를 치며 어떻게든 호감을 표현하려고 애써고, 고양이는 데크 난간 위나 뒷마당 장독 위, 감나무나 모과나무 가지 위, 흔들 그네 지붕 위에 수시로 올라가서 고상한 척 내려다보며 하품이나 쩍쩍합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