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은 아주 좋은 치유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온몸에 뭉쳐 있던 감정의 세포들이 밝은 햇살처럼 퍼져나가거든요. 자신의 관심사를 통해 감동스런 순간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것 같아요. 저는 대자연 속을 거닐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영화를 보면서, 또 선각자의 인물 스토리를 통해서 주로 감동을 받는 것 같습니다. 물론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도 있겠지만요. 얼마 전에 TV에서 시인 윤동주와 이육사의 생애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고리들이 민족을 위한 저항과 시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시인에 대한 감동이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주가 살았던 시대 배경과 생애를 함께 비춰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암송하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풋풋한 가슴을 순수하게 적셨던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2년 전 새해 초에 광양 망덕포구에 다녀온 기억도 납니다. 한창 함양상림 글쓰기에 집중할 때였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보존했던 역사적인 현장을 불현듯 보고 싶었거든요. 북간도에서 나고 자란 윤동주의 고매한 정신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남쪽 바다에도 머물고 있습니다. 망덕포구에 가면요. 겨울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고 앉은 정병욱 가옥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원고는 원래 3부를 만들었지만, 다 사라지고 이곳에 보관했던 원고만이 남아서 시인 윤동주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의 현장은 동주의 시와 푸르고 시린 삶으로 안내하는 등대 같습니다. 윤동주는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집단으로 이사를 간 중국 땅이지만 우리의 옛 땅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동주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곳입니다. 첫 번째 영향은 명동촌의 대자연입니다. 명동촌은 비산비야(非山非野 산도 들도 아닌 땅)로 펼쳐지는 드넓은 만주벌입니다. 산이 장대하게 거칠고 들판은 비옥하게 드넓은 그런 곳이겠지요. 계절마다 수목이 옷을 갈아입는 대자연의 호방함과 섬세함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동주는 이곳에서 유소년기를 살았습니다. 동생 일주는 동주가 고향의 들길이나 산길을 즐겨 걸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관조하는 사이 그 영혼은 더욱 순결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집명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도 동주의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동주가 노래한 시들은 하늘과 바람과 별을 키워드로 한 고뇌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그 시어에는 명동촌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기상이 숨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일제강점기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모여든 역사적 인물과 신학문입니다. 명동촌은 근대 민족 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재가 모여 민족교육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김약연, 이상설, 이동녕 등이 학교를 세웠지요. 여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찾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동주도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에 눈뜨는 계기였을 터입니다. 세 번째는 명동촌에 불어닥친 종교입니다. 북간도의 기독교는 선교사의 포교가 아니라 민족의 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동주는 이러한 윤리적 기독교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빼앗긴 나라에 살고있는 자신의 길 앞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부끄러워했습니다. 무기력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은 그의 시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갈고 닦으려는 자화상의 우물같은 의지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동주의 실천적 윤리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1940년대 초기 수많은 지식인이 친일로 넘어가던 암울한 시기 동주는 고뇌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글은 사라져가고 모든 문학인이 시를 외면하던 때였습니다. 동주는 굴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시어에 등장하는 낭만과 서정적 언어의 내면에는 개인적인 고뇌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끝내는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를 나누게 되지요. 고뇌하고 방황하던 자신과 화해하는 동시에 인류애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한 양심의 길을 걸었다는 겁니다. 28세의 순절로서. 시인 윤동주는 이제 영원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유로운 양심이 되었네요. 자신을 갈고닦아 승화시킨 양심은 스스로 하늘과 바람과 별이 되었습니다. 때론 문학 소년과 소녀의 가슴에, 때론 민족 저항의 양심에, 때론 참회록이 되어 자신을 닦는 구리거울로, 때론 십자가가 되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애로…… 동주의 시와 얼은 이 시대 수많은 가슴에 치유의 숨결이라 여깁니다. 그의 인생을 열어보는 순간요.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치유의 숨결을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동주에게 배우는 숙제입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