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십니까? 요즘 일본은 제 3여파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좀 잠잠해질 무렵, 일본에서는 ‘Go to 트래블’라는 여행지원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그 프로젝트가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 프로젝트가 계기가 되어서 더욱 확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이라면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인 북해도에 여행자가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은 북해도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어났다가 지금은 전국적으로 매일 확진자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제1여파 제2여파 때는 젊은 확진자가 많았지만 이번은 고령자가 많다고 합니다. 나라에서는 “코로나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슬로건을 외치고 있답니다. 한국도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12월3일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께서는 특히 더 걱정되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의 습관이 생겨서 감기나 독감 환자가 적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코로나에서 얻은 교훈이 앞으로 미래를 비춰주는 결과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큰오빠 결혼식 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오늘은 작은 오빠 결혼식 이야기입니다. 작은 오빠는 중학교 교사가 되자마자 23살에 결혼했습니다. 상대도 역시 같은 직종인 음악교사를 했던 사람이었는데 신부의 아버님께서는 중학교 교장을 오랫동안 했던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형제가 8남매 정도 되는 집안이라서 결혼식에 초대하는 인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보통 신랑 쪽과 신부 쪽이 초대하는 사람의 수를 비슷하게 맞추는데 저희 집은 초대할 사람이 얼마 없어서 도저히 맞춰주기 어렵다고 그냥 신부 쪽이 많은채로 했습니다. 아마 그때 저희 집은 50명도 안 됐지만 신부 쪽은 200여명이 넘었던 것으로 압니다. 올케가 우리한테 많이 신경을 쓰면서 죄송하다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실 올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참석해서 부담스럽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의식은 신사에서 하고 피로연은 넓은 식당에 준비되었습니다. 도착하고 식당에 들어섰는데 눈앞에 준비되어 있는 300여석 정도의 자리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자리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손님이 본인의 이름을 찾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오빠가 결혼했던 1980년대의 신부는 결혼식 의상을 입고 자기 집에서 나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모든 이웃사람을 초대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해서 이웃사람에게 결혼을 한다는 것을 보고 드리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올케는 白無垢(시로무크)라는 전통의상을 입었는데 그 의상이 5~10kg 정도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아주 무겁습니다. 머리에 큰 모자 같은 것을 써야 해서 걷는 것도 혼자 못해서 한 발씩 한 발씩 천천히 내딛는데 아주 답답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집에서 신사로 이동하고 결혼의식을 마치고 또 피로연 식장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아주 아름다워서 언제 나는 그 의상을 입고 결혼할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피로연이 시작됐는데 앉아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서빙을 하는 사람이 자꾸 왔다갔다해서 큰오빠의 결혼식보다 더 바쁜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잊지 못하는 것은 오빠가 담임 맡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드라마 등으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빠가 학생들을 대할 때의 모습은 제가 알고 있던 오빠가 아니었고 중학교 교사의 모습이었습니다. 갑자기 오빠가 존경스러워진 순간이었습니다.요즘 결혼식은 식 중에 갑자기 신랑이 신부를 감동시키는 퍼포먼스를 하지만 그때는 친구들의 축하말씀이나 노래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이 생겼습니다. 신부 쪽 손님들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신랑신부를 위한 축하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고 하객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피로연 분위기가 완전히 깨졌습니다. 처음부터 산만했던 분위기를 참고 있었던 큰오빠가 갑자기 일어나서 “더는 못 참겠다. 그 사람들에 가서 말하고 올께”라고 했습니다. 옆에 있었던 저는 “일단 가지마요.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거에요”라고 했는데 “한번밖에 없는 우리 동생 피로연인데 자기 마음대로 술 마셔서 소란을 피우면 되나!”라고 하면서 가려고 했는데 사촌오빠가 말려서 다행히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부 쪽에서 그것을 눈치채셨는지 그 시끄러운 분들에게 한 소리 해 주시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두 오빠의 정반대인 결혼식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