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댁 친정 아버지 당숙모가 절터댁 남편 6촌 형수라고 한다. 그러면 자리댁과 절터댁의 관계는? 곶감 작업 8일차, 꼭두새벽부터 자리댁을 태우고 절터댁을 픽업하러 엄천강변을 달리는데 자리댁이 어제 밤늦게 절터댁과 통화하고 화해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지캉 내캉은 남도 아닌기라~ 우리 친정 아버지 당숙모가 즈거 남편 6촌 형수거든~”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은 점심도 먹을 수 있고 곶감도 평화롭게 깎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지기이자 곶감 깎기 찰떡콤비인 절터댁과 자리댁이 어제 다퉜다. “꼭지를 그래 삐자놓으면 시간만 낭비제~ 제대로 쫌 해봐바~” 무심코 툭 던진 자리댁의 말 한마디에 절터댁이 삐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점심도 안 먹고 티격태격 오후 내내 가재미눈을 떴다. “나는 오늘 점심 생각 없다~” 골이 난 절터댁이 점심을 안 먹겠다고 선언하니 자리댁도 밥을 먹지 못했다. 곶감 작업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잘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허기진 채 일을 하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중간에 낀 나도 덩달아 점심을 굶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이 밥까지 굶을 필요는 없었기에 나 혼자 몰래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분위기상 그러지 못했다. 다 해 놓은 밥을 먹지 못하니 배를 긁어도 등이 시원할 지경이었고 느슨하게 이어진 오후 작업은 활력을 잃었다. 처음엔 그 냉냉한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했기에 작업이 왜 이리 손발이 맞지 않을까 답답해했다. 우리는 방역당국의 지침을 준수하여 마스크 쓰기를 성실히 실천하고 있었기에 마스크에 가려진 절터댁의 심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쩐지 작업은 자꾸 엇박자를 내고 있었고 나는 그냥 이어지는 작업에 고단해서 그러나보다 싶었는데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가재미눈을 얼핏 보고는 감을 잡았다. 오후 참 먹을 시간을 분위기를 바꿔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나는 따끈따끈한 빵, 바나나, 자몽차, 귤까지 먹거리를 가득 내어갔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절터댁은 차 한 잔, 자리댁은 귤 하나 까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바람에 나도 차만 한 잔 마시고 배고픈 오후 작업을 이어갔다.“어제는 정말 배가 고파 죽는 줄 알았어~ 나는 밥을 조금씩 자주 먹는 편인데 지가 안 먹으니 내 혼자 먹을 수가 있나~ 따지고 보면 지캉 내캉은 남도 아닌기라.....” 엄천강 이쪽저쪽 마을에서 해방 전에 태어난 두 분은 평생 이웃사촌 일 뿐만 아니라 자리댁의 아버지의 누구누구가 절터댁 남편의 누구누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두 분은 도대체 얼마나 가까운 친척이 되는 걸까 싶어 가계도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는데 내가 촌수에는 워낙 젬병이라 그리다 말았다. 끝가지 그렸으면 정말 흥미로운 그림이 되었을 것이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다투고 화해하고 나니 오늘 아침은 희희낙락이다. 마당에는 프랑스 장미 테라코타가 두 송이 피었는데 마스크 뒤에 숨은 자리댁과 절터댁의 미소만큼 아름답다. 이 두 송이가 올해 마지막 장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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