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곶감 숙성용 하우스 한 귀퉁이에 천만가지의 묻지마 망한 곶감이 쌓여 있었다. 곶감을 만들다보면 다양한 형태의 못난이가 이쁜이 속에 숨어 있다가 포장단계에서 적발되는데 이 못난 곶감은 눈에 보이는 대로 따로 채반에 던져둔다. 불량 곶감은 애초에 토막을 내어 감말랭이를 만들었으면 귀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많이 만들다보면 이런 못난이가 꼭 나오게 된다. 모두가 일등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겨울엔 유감스럽게도 망한 곶감이 많이 나왔다. 곶감 건조와 숙성이 거의 끝나갈 지난 연말 어느 날 우리 마을 여름촌 아지매가 선물할 데가 있다면서 곶감을 사러 오셨다. 하우스에서 햇볕 샤워중인 곶감을 보시다가 한쪽 귀퉁이에 쌓아놓은 못난이 곶감 채반에서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드시고는 “먹는 데는 이상 없잖아~ 난 이런 게 좋아~” 하신다. 나는 이런 불량 곶감을 팔면 욕먹을까봐 판매는 하지 않고 우리 가족이 먹거나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나눈다. 여름촌 아지매도 선물세트 세 박스랑 같은 양의 묻지마 망한 곶감을 업어가셨다. 지난겨울에는 어찌된 일인지 이런 불량 곶감이 너무 많이 나와 미처 다 나누지를 못하고 냉동 창고 한 귀퉁이에 쌓아두고는 잊어버렸다. 나는 연중 곶감을 판매하는데 설날 전까지는 주문이 많아 포장하기 바쁘게 나간다. 연간 곶감 판매량을 산에 비유해보면, 설전에는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갔다가 설이 지나고 봄의 끝자락까지 능선 길을 걸어 노고단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여름 내내 엄천골 앞산 뒷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추석에 덕유산에 한번 오른다. 그리고 늦은 가을 감을 수확해서 햇 곶감을 만들기 직전, 냉동 창고를 비우고 원료 감을 저장할 무렵이면 남은 곶감은 부랴부랴 창고 정리 세일에 들어가고 한해 곶감 판매는 마감된다. 얼마 전 창고 정리 세일을 하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망한 곶감이 나타났다. 망한 곶감은 돈을 받고 팔면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단돈 천원도 가격을 매기지 못하고 호기심으로 신청한 용감한 고객에게 보내드렸다. 그런데 뜻밖에 이 묻지마 망한 곶감에 대한 후기가 꾸준히 올라와 살짝 당황스러웠다. “망한 곳감 쫀듯쫀듯 달콤함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내용” “`망한 꽃감`이 너무 맛있고 푸짐해서 행복했습니다... 이걸 살 수는 없나요?” 천만가지 묻지마 망한 곶감 중 어떤 것은 후기대로 맛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수정과나 만들어 먹어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망한 곶감이 맛있다는 후기가 꾸준히 올라와 나도 몇 번 시식을 해보았는데 대부분 생각보다 괜찮았다. 못생겼지만 착한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고객 입장에서는 신청만 하면 주는 공짜 상품이라 맛이 좀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묻지마 망한 곶감을 포장할 때 욕먹을까봐 염려가 되었는데 맛있다는 댓글이 달리고 나서는 포장이 재밌어졌다. 내일 상강, 본격적인 감 수확이 시작된다. 올해는 고소작업차도 입대하고 힘쓰는 남자 놉도 구해놓았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아들도 주말에 아빠를 돕기 위해 내려온다고 한다. 올해는 곶감을 잘 만들어서 묻지마 망한 곶감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 망한 곶감이 많이 나와도 괘념치 않겠다. 이것 때문에 즐겁고 재밌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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