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참 시원하다. 하늘 정원 앵두나무와 블루베리 나무의 잎들이 노르스름하며 불그레하게 물들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다락방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유튜브 영상물 내레이션을 하는 동안 풀벌레들이 노래하며 귀를 즐겁게 한다. 촉각과 시각, 청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끝내는 가슴으로 느낀다. 가을이 왔음을. 올해는 끝나지 않은 코로나 속에 약 오십 여일 간의 긴 장마와 얼마간의 무더위, 두어 차례 태풍도 있었다. 그러나 기어이 9월이 되고 가을은 왔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찾아온 이 가을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좋다. 마치 애인을 만난 듯 가슴이 뛰고 설렌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유리창처럼 맑고도 파란 하늘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저마다 향기를 드러내며 피어있는 가을꽃들과 곱게 곱게 물드는 낙엽을 보고 있으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다. 바람에 몸을 흔들며 떨어지는 낙엽은 휑하니 가슴을 후비며 빈자리를 만들어 쓸쓸하고 외롭게도 하지만 그 빈자리마저도 사랑스럽고 예쁘다. 이런 가을 분위기에 맞게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계절이 또한 가을이지 않은가. 그리고 심연의 고독을 통해 나와 대화하며 사색하고 나를 성숙시키는 계절도 가을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발표한 2005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2500명을 대상으로 어느 계절을 가장 선호하는지를 조사했더니 가을이 1800명, 봄이 300명 순으로 가을이 단연 1위였다. 사람들이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와 있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시인은 그의 시에서 누군가 따뜻한 손을 잡아줄 사람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가을이 좋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들도 가을에 대해서 유독 많은 노래를 하고 있다.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 베를렌의 ‘가을’, 릴케의 ‘가을’, ‘가을날’ 그리고 아미엘과 페르난두 페소아 등 수많은 작가도 그의 저서에서 가을에 더 많이 사색하고 가을을 즐긴다고 이야기 한다.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에서 낙엽 타는 냄새에서 갓 볶아낸 커피 냄새와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나며 낙엽 냄새를 맡고 있으면 갑자기 맹렬하게 생활의 의욕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단풍과 낙엽을 볼 수 있는 이 가을에 맹렬하게 독서의 의욕을 느낀다. 4월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후유증이 있어서 아직도 몸이 정상이 아니다. 마침 계약 기간도 끝나고 해서 지난 1년간 열심히 일하던 직장을 엊그제 그만두었다. 이제 자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독서를 하며 이 가을을 즐기려 한다. 근 십 년 동안 가을이 되면 쓸쓸함과 외로움을 넘어 고독 속에 빠져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는데 올해 가을은 참 평안하고 행복하다. 이 마음 그대로 책 속에서 많은 작가를 만나고 대화하고 싶다. 나의 장기 목표 중의 하나는 예순 이후에 정말 이름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이미 보들레르와 베를렌, 랭보, 톨스토이를 만나고 있다. 다시 릴케와 칸트 그리고 아미엘과 페르난두 페소아, 신형복 등 많은 작가를 만날 계획이다. 안중근 선생님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고 세종 대왕도 책을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청나라 강희대제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집정의 기본 사상을 확립했다. 오늘날 뛰어난 지도자나 유명인 중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 책 속에 사색이 있고 성찰이 있다. 가을과 독서! 환상의 짝꿍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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