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충직하지만 고양이는 글쎄? 그렇지 않다. 뭐랄까? 고양이는 딱히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BC 17년(Before CatSuri) 우리 집에는 개가 다섯 마리 있었다. “코시야~ 이리와~” 하고 부르면 (코시만 불렀는데도)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왔다. 선착순이라도 하듯 개들이 뛰어오면 나는 내심 뿌듯했다. 코시 코에 이어 시를 발음하기도 전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꼬리를 흔들며 심지어는 엉덩이를 흔들며 달려오는 개들을 보면 키우는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에(Before CatSuri) 앞마당에 살았던 개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 입양한 양치기 개 사랑이와 그녀의 딸 오디가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참고로 우리 집은 2년 전 길냥이 수리가 태어난 해를 냥력 원년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오는 개들에 익숙해 있는 나에게 “수리~수우리~ 이리와~“ 하고 소리 높여 불러도 눈도 끔쩍 않는 고양이 수리는 정말 연구대상이었다.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지능이 낮아 자기 이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싶기도 했는데 어떤 때는 부르면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어거적어거적 다가오기도 하니 결코 지능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불렀을 때 수리가 다가오는 예외적인 경우는 식사 시간이다. 그 외는 아무리 불러도 내 목만 아프다. 요즘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또 간식이라도 들고 있지 않을 때는 아예 부르지도 않지만 처음엔 대꾸 않는 수리 때문에 열이 좀 올랐다. (건방진 똥떵어리 같으니라고... 내 자존감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다니... 내가 지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맹세코 더 큰 피해가 너에게 돌아가도록 해주겠어...) 고양이를 키워보니(모시고 살아보니) 고양이는 확실히 개와 다르다. 고양이에게는 개 같은 충직함이 없다. 하지만 다른 뭔가가 있다. 사실 처음 산책길에 만난 수리를 업어왔을 때 키우겠다는 생각은 1도 없었다. 다만 외면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측은지심에 일단 구조부터 한 거다. 그리고 우리 집에 곶감 깎으러 오는 절터댁으로부터 “고양이는 냄새가 나서 집에 들일 짐승이 못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내가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인연(묘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내가 수리를 만난 날 재를 넘고 강둑을 따라 올라오는 산책길을 그날 딱 하루만 반대 방향으로 돌았고 수리를 만났다. 아내가 오늘은 반대로 한번 돌아보자고 해서 돌았던 것이다. 항상 돌던 대로 돌았으면 수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고양이는 타고난 마법사일까? 수리수리마수리 반대로 돌아라~ 하고 마법을 부린 것일까? 집에 데리고 와서도 현관 앞에서 일단 밥을 먹이고 나서 이제 어쩌지? 어쩌지? 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부부에게 마법을 걸어 현관문을 열게 하고 안방을 차지했을까? 모르는 일이다. 고양이는 정말 알 수가 없는 동물이다. 수리는 부르면 못들은 척 외면하고 지 할 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수리가 냐옹~하고 부르면 아내가 후다닥 달려간다.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아내는 창밖에서 냐옹 소리만 나면 오구오구 수리와쪄~ 어디갔다 이제 와셔? 하며 맨발로 달려 나간다. 수리는 잠만 현관에서 자고 마당에서 주변 밭에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일정이 바쁘실 때는 얼굴 보기 어렵다. 다람쥐 사냥대회라도 있는 날에는 밤늦게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수리가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아내가 걱정이 많다. 혹 불량 고양이를 만나 휩쓸려 다니는 건 아닌지 혹 멀리 가서 길을 잃어버리고 집을 못 찾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한다. 정말 걱정도 팔자다. 그런데 그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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