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걷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한마디 한다. “엄마, 신발이 돌을 밟았다.” 그래서 “신발이 돌을 밟았어?” 라고 물으며 신발 밑을 보니 진짜 돌이 있었다. “많이 아팠겠구나” 라며 돌을 끄집어냈더니 아들이 또 말한다. “그런데 돌이 사탕처럼 생겼다” 이번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들이 블록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만들고 있다. 비행기며 사다리며 조종사, 손님 등 필요한 것들을 만지작거린다. 잠시 후에 보니 계단에 내리는 여자 손님과 그 뒤에 조종사가 있다. “필립아, 지금 이 사람들 뭐 하고 있니?”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들이 웃으며 하는 말 “응, 결혼해” 너무 놀라워서 “결혼이 뭐지?” 물었다. 골똘히 생각하더니 “결혼은 꼭 껴안아 주는 거지”라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누구와 결혼했을까?”라고 다시 묻자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랑 결혼했지”라며 환하게 웃는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를 넘겨보니 이런 일들이 참 많아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몇 가지 사전을 종합해 보면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알고 그 사람의 기분을 같이 느끼고 적절하게 반응해 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대화에서 엄마와 아들이 하는 대화, 연인들이 하는 대화만큼이나 공감을 잘 이루고 있는 대화가 있을까. 위의 두 상황에서 아들과 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허공에 대고 던지는 메아리 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했다. 아무런 질문 없이 고개만 끄덕이거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상황에 맞는 질문은 상대방을 내게로 끌어당길 수 있다. 공감하는 질문은 일 대 일의 대화에서 상대에게 다가가는 최선의 길 중 하나이고 다수의 사람이나 대중 앞에서 말을 할 때 대화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모 대학 입시설명회 행사진행을 맡아서 하고 있을 때다. 그날도 서너 군데 고등학교 학생들이 왔다. 행사가 두어 시간 소요되어서 인내심이 필요하기에 오프닝 멘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험 친다고 고생 많았지요? 이제 남자 친구 여자 친구도 만나야 되고 알바도 해야 되는데 학교에서는 왜 이런 곳에 보내는지 참 밉지 말입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큰소리로 “네” 한다. “후딱 마치고 여러분 볼 일 볼 수 있도록 해 드리지 말입니다” 라는 말을 덧붙이자 아이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날 참석한 아이들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집중했고 다른 날 참석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적극성을 보였다. 학생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질문과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이 공감한 것이다. 공감하는 질문에 청중은 환호하고 온몸으로 답하며 즐거워한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 사상가인 볼테르는 사람을 판단하려면 그의 대답이 아니라 질문을 보라고 했다. 결국 질문이 대화를 좌우하고 대화의 격을 좌우하는 것이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이고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질문은 상대방이 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질문이다. 옆에 있는 사람이 좀 지루해 하거나 청중이 소란스럽게 할 때 질문을 해 보라. 귀를 쫑긋 세우고 나에게 집중을 할 것이다. 진심을 담은 좋은 질문이 없다면 진심어린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기름과 물처럼 전혀 섞이지 않고 청중과 내가 따로 논다면 그 시간은 아무 가치가 없다. 애써 마련한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현재 내 눈앞에 있는 상대방과 나 그리고 청중과 내가 하나가 되는 질문, 공감을 이끌어내는 질문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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