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중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과학 영재반’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요청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 ‘영재’란 말을 듣고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재라 함은 뛰어난 재주나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과학영재반이란 과학에 있어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놓고 교육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재주란 무엇을 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를 이르는 말로 부단한 노력에 의해 얻어진 능력보다는 선천적인 것이 더 강조된 말이다. 결국 어느 정도 본래부터 과학에 남다른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더욱 과학에 흥미를 갖고 미래에 뛰어난 과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타고난 과학적 소질이나 능력이 그저 평범한, 다시 말해 영재의 부류에 속하기 힘든 필자가 맡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강의를 맡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짧은 시간이지만 모든 강의 내용과 계획을 필자가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사전적 의미의 영재를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정의하고 제시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과학문명이 속속들이 인간의 삶 속에 파고들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한 ‘과학영재’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 가를 살피고 제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영재를 길러내는 데 필요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 가를 고민해보고 싶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국제회의나 대중 매체를 통해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등의 입을 빌어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기초과학분야 마저도 다른 응용분야와 다르지 않게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그 연구사업들이 펼쳐진다. 훌륭하고 경쟁력 있는 물리학자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게재하며, 또 그것을 평가 기준으로 하여 많은 연구비를 지급하고 있다. 물론 수십 년 전에는 그런 평가기준도 없었기에 다소 투명해진 부분도 있으나 많은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값비싼 실험장치, 그리고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연구주제 등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재정적인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오랜 동안 인류가 풀지 못했던 깊은 문제들을 오랜 시간동안 끈기 있는 연구를 통해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유행에 따라 돈이 되는 쪽으로 행하는 주제들에 어떻게든 동참하여 주어지는 자본의 혜택을 마음껏 취함으로써 그 ‘명성’을 유지하는 과학자가 진정 인류에 공헌하는 과학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결과는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 스스로가 갖춘 학문적 역량이나 질에 있어서는 매우 뒤질 수밖에 없다. 어느 전공 영역에서든 그 분야의 세계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는 과학자가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다는 것이 그 사실을 반영한다. 특히 수학이나 이론물리학 분야에서는 그 격차가 매우 심하다. 막대한 자본과 선진 실험기술 도입으로 외관상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인류 지성에 큰 자취를 남길 수 있는 과학자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학영재’란 후자와 같은 과학자가 아닐까? 더 나아가 특정 분야에 권위를 갖고 세계적 지도자가 되는 것을 넘어 자신의 학문이 인류문명과 어떤 연관성이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인류의 평화로운 상생과 공존과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함께 생각하며 연구하는 과학자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극도의 기술문명 속에 인류의 생존마저도 위협받는 이 시대에 그 주된 원인을 제공했던 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가 깊은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인류를 건강하게 유지시킬 수 있도록 자신의 학문을 추구하는 노력에 있어서 뛰어난 자가 ‘과학영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중학생들에게 문명치료, 생명, 생태계 순환 등에 관해 들려주면서 이 학생들에게 항상 화두로서 자리함으로써 과학 영재로 성장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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