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는 차라리 이파리가 꽃이다. 봄 사월 하순이면 연초록 이파리가 아기 미소로 방긋방긋 웃으며 꽃인 냥 피어난다. 오월에 하얀 것이 꽃이랍시고 피기는 하지만 이맘 때 피는 매혹적인 이파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낫 한 자루 들고 감나무 과수원으로 가는 길에 달콤한 꽃향기가 훅하고 밀려온다. 파도처럼 훅훅 얼굴을 덮친다. 아직 찔레는 피지 않았고 아카시아 꽃은 더더군다나 멀었는데 이 달콤한 향기는 뭐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솜방망이 노란 꽃이 군락으로 피어있고 치렁치렁 흔들리는 상수리나무 꽃술은 봄을 응원하는 치어리더 같다. 노란 양지꽃이 여기저기 뭉텅뭉텅 피어있고 애기똥풀 드문드문 보이지만 향기가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산책길에 아내가 향기가 난다 향기가 난다 했는데 이게 그 향기인 모양이다. 감나무마다 새순이 앙증맞게 나왔다. 장대 낫 휘두르며 덤불 정리하는데 콧등을 스치며 꿩이 솟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밟을 뻔 했다. 그런데 이 놈(까투리였으니 놈이 아니구나)의 꿩이 내가 장대 낫을 휘두르며 두 어 시간 동안 소란을 피웠는데 왜 여태 도망을 안 갔을까? 엉큼하게 덤불 속에 머리만 박고 있으면 들키지 않으리라 믿었을까? 아님 혹 알을 품고 있었나? 싶어 감나무 아래 수북한 덤불을 헤적여보니 과연 둥지에 파르스름한 알이 가득 있다. 앗싸~ 이게 웬 횡재냐? 꿩 먹고 알 먹기라는데 비록 꿩은 날아가 버렸지만 큼직한 알이 12개나 되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그래 고맙게도 꿩은 한꺼번에 알을 한 다스나 낳는구나 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득템해서 간장조림 해 먹었다라고 하면 그 농부 그래 안 봤는데 참 쪼잔하네~ 할 것이다. 아무리 내가 과수원 주인이고 밭이 내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지만 이런 경우엔 참 미안하다. 세든 손님이 알을 품고 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소란을 피워댔고 하마터면 장대 낫으로 덤불에 가려진 둥지를 칠 뻔했다. 대참사가 날 뻔한 것이다. 나는 얼른 인증샷 한 장 찍고 덤불을 원상 복구해 놓고 집으로 왔다. (실은 일이 하기 싫어 꾀가 난 농부가 알을 품다 피신한 까투리 핑계대고 일찍 마친 거다.) 꿩알은 계란과 한가지로 3주 품어야 부화된다. 까투리가 언제 알을 낳고 포란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나무 아래에 둥지를 트는 바람에 한동안 서로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생겼다. 순전히 내 짐작이긴 하지만 지난주엔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아마도 알을 낳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최대 3주까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서로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해서 좋은 성과를 봐야할 것이다. 정원에 꿩이 날아들면 재수가 있다고 하고, 보리밭에서 꿩알을 주우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까투리도 부화에 성공해 꿔병이 열 두 마리 모두 잘 키우고 나도 올해 감 농사 풍년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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