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산행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것이다. 산능선 가득한 봄기운을 가르며 휘이휘이 걷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좋은데 뽀드득 뽀드득 눈까지 밟는다면 몸이 붕붕 뜰 것이다. 두 달째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심신이 한 방에 즉시 행복해지는 백신을 맞은 것처럼 날개를 펼치게 될 것이다. 꽃피는 봄 사월의 지리 상봉에는 봄비가 봄설로 내려 그림이 되기도 한다. 지난주 봄비 내릴 때가 그랬다. 내가 사는 엄천골에는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뒤돌아 고개를 치켜드니 지리 상봉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꽃샘추위가 닥쳐 사과, 감 등 과수들이 냉해를 입을 정도였으니 높은 산에 눈이 쌓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리상봉이 해외여행 홍보물에서 보던 알프스와 후지산처럼 거대하고 하얀 망토를 두르고 있으니 굳이 돈 들여 외국까지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데 직접 올라가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엔 그냥 한번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러다 한번 올라가볼까? 하고 아내랑 가볍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진지해져서 정말 올라가기로 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또 생길지 모르니까... 다음에 기회가 생겨도 그 때 체력이 가능할지도 모르고... 지난 주 코로나로 뒤숭숭한 총선 날이었다. 아내랑 나는 사전투표를 했기에 아침부터 배낭을 꾸리고 뱀사골로 악셀을 밟았다. 때가 때인 만큼 마스크와 손세정제도 잊지 않고 챙겼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라 산꾼들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부대낄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준비는 했다. 산길을 걷다보면 호흡이 가빠져 평소보다 비말이 멀리 퍼지니 비록 먼 거리에서 서로 비껴갈 지라도 조심할 필요는 있다. 이 시기엔 누구나 잠재적인 전파자가 될 수 있으니 마스크는 서로에 대한 기본 예의이자 의무인 것이다. 뱀사골에서 달궁을 지나가는데 벚꽃이 절정이다. (산 아래 동네에는 벚꽃이 떨어진 지가 언젠데 여긴 확실히 추운 동네구나... 이제사 벚꽃이 절정이라니...) 차가 달궁을 지나 성삼재로 올라가며 고도 천 미터를 넘어서니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나무에 새순이 하나도 안 보이고 온통 회색이다. 고작 버들강아지 드문드문 눈 뜬 게 다다. 4월 중순이건만 산 아래 동네의 2월말로 돌아간 것 같다. 성삼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노고단으로 올라가는데 공기는 포근하다. 적어도 성삼재에서 부터는 눈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유감스럽게 노고단에도 눈은 다 녹아버리고 그늘진 음지에만 눈더미가 드문드문 보였다. 맑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금새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우리 마을에서 올려다보는 상봉 북사면은 설산이었는데 이게 어찌된 거지? 게다가 산꾼들도 많아 괜히 배낭을 맸다는 후회가 들었다. 뱀사골에서 달궁을 지나 성삼재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차가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성삼재 주차장은 거의 만차 수준이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라고 다들 나처럼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온 사람들 일 것이다. 열에 일곱은 마스크를 쓰고 걸었고 셋은 마스크를 하지 않아 조심스러웠다. 특히 마스크 안 쓰고 떠들며 걷는 젊고 활기가 넘치는 산꾼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우리는 노고단에서 준비해간 도시락 먹고 사진도 안 찍고 서둘러 내려왔다. 한 방 맞으면 즉시 행복해지는 백신을 내년에는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투덜투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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