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못 들었나? 절기상으로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이긴 하지만 겨울에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리다니 나는 귀를 의심했다. 뭐지?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데? 아무리 날씨가 포근하다지만 아직은 1월인데 내가 헛것을 들었나 싶다. 그런데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덕장에서 아직 포장하지 못한 곶감을 손질하는데 개구리울음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일손을 멈추고 앞마당으로 나서니 개구리들이 겨울 빗물 고인 도랑에서 아르르아르르~잠이 덜 깬 쉰 목소리로 아주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다. 나는 잠시 헷갈렸다. 개구리가 원래 입춘 때 나오는 건가? 입춘 추위에 선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도 있듯 말이 봄의 문턱이지 아직은 개구리 따위가 감히 얼굴을 내밀 때가 아니다. 개구리는 우수 지나고 경칩 때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경칩은 3월 초순인데 아직 한 달 이상이나 남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다. 겨울 날씨가 아무리 따뜻하다지만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웃음이 나왔다. 허허 이거 참 이것들이 정말. 개구리를 탓할 수는 없다. 동물들은 원래 서케디언 리듬이라고 불리는 자체의 고유한 생체리듬 시계가 있어 인간의 달력과 상관없이 내부의 생체리듬에 따라 움직인다고 한다. 따뜻한 겨울날씨가 개구리의 생체리듬을 속여서 땅속에서 튀어나오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일기 예보를 보니 매서운 추위가 한차례 올 거라고 한다. 이번 한파에는 선늙은이 대신 선개구리가 얼어 죽게 생겼다. 따뜻한 겨울날씨에 속은 건 개구리만이 아니다. 집 주변 화단엔 알리움 기간티움이 쑤욱 솟아 올랐다. 가을에 심는 구근 식물 중에는 크로커스가 제일 먼저 꽃을 피우지만 정작 크로커스는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 알리움 기간티움이 뭐가 바쁘다고 무슨 배짱으로 얼굴을 내밀었을까? 계절이 바뀔 때는 두 번째로 얼굴을 내미는 게 안전하다. 사람의 일도 그렇다. 첫 번째로 올라오는 건 항상 시련을 겪고 좌절하게 되어 있다. 지혜로운 작약과 백합은 안전한 땅 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성급한 덩굴장미는 어린 순을 내밀고 있고 큰개불알꽃은 (땅에 코를 박고 보면)개미 똥꾸멍 만한 꽃을 피우고 히히 웃고 있다. 다시 추워지면 선개구리 얼어 죽고 덩굴장미 어린 순, 기간티움, 큰 개불알꽃이 얼어 죽겠지만 내가 뒤늦게 손질한 곶감은 하얀 꽃을 보기 좋게 피울 것이다. 이렇게 추위가 오락가락 하면 하얗게 꽃분이 난 곶감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쫀득쫀득해지고 당도가 겁나게 올라간다. 그래서 곶감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곶감은 겨울 한철 먹는 계절식품이고 설이 지나면 시즌이 끝난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옛이야기다. 요즘은 곶감 농가에도 냉동시설이 많이 보급이 되어 연중 곶감을 파는 농가가 제법 있다. 곶감은 영하 5~6도에서 분이 가장 잘 나고 영하15도에서는 분이 살짝 난다. 그리고 영하20도 까지 온도를 낮추면 분이 거의 나지 않고 몇 년간 보관이 된다. 따라서 곶감은 보관만 제대로 하면 봄여름 가을이 없다. 언제라도 냉동실에서 달콤한 곶감을 꺼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곶감은 냉동상태에서도 아주 조금씩 숙성이 되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이 난다. 포도주처럼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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