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깔 좋고 달콤한 대봉 반건시를 포장하며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명품 프랑스 와인을 떠올렸다.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수확 시기는 전통적으로 오직 농장주 한 사람만 결정할 수 있는데 백작 작위를 가진 프랑스의 어느 농장주가 해외에서 늦게 귀국하는 바람에 포도 수확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와인 담금용으로 수확해야할 탱글탱글한 포도가 쭈글쭈글해진 뒤에야 허겁지겁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백작은 버려야할 포도가 아까워 버리지는 못하고 와인을 담았는데 운 좋게도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향기로운 명품 와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뒤로 와인 담금용 포도는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도의 단맛이 가장 좋은 시기에 수확한다고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순전히 우연에 의해 명품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올해 고종시와 대봉외 단성시, 반시, 두리감 등등 다양한 종류의 곶감에다 기능성 곶감 시제품까지 연구 개발하느라 대봉 곶감 포장이 지연되었다. 고객의 기호는 다양해서 고종시가 더 맛있다는 고객이 있는 반면 대봉만 찾는 고객도 있다. 그런데 올해는 대봉곶감 출하가 이런저런 연유로 늦어졌는데 와중에 우연히 대봉곶감이 반건시 상태에서 더 이상 말릴 필요가 없는 명품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때마침 반건시를 찾는 고객이 있어 손이 닿지 않는 냉동 창고 깊숙한 곳에 있던 대봉을 맛보다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그 프랑스의 명품 와인이 떠올랐다. 감을 반쯤 말리면 반건시라 한다. 반건시는 속이 달콤한 홍시고 껍질도 부드러워 젊은 사람은 물론이고 나이 드신 분이나 아이들이 먹기에 좋다. 이어서 감을 완전히 말리면 건시다. 속이 젤리 상태로 말랑말랑하고 겉은 쫄깃해서 간식으로 그만이다. 그런데 통상 우리가 말하는 호랑이도 무서워한다는 곶감은 건시를 말한다. 특히 내가 사는 지리산 지역 사람들은 곶감은 건시를 말하는 것이고 반건시는 아예 곶감 축에도 끼워주지 않는다. 이곳에는 반건시를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에게 곶감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준 곶감 도사도 항상 하는 말이 “곶감은 건시야~ 건시를 만들어야 해~ 반건시는 곶감이 아니야~”라며 제대로 된 건시를 만들라고 했다. 십수년 째 곶감을 만들어오면서 나도 반건시는 만들지 않았다. 배운대로 반건시는 건시인 곶감을 만드는 중간 과정으로만 알았지 반건시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중에 유통되는 반건시는 모두 건시를 만들 시간이 없어서 혹은 건시를 만들 열정이 부족해서 만들다가 중간에 파는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높은 곳에 있는 포도를 맛없는 신포도라고 했듯 나도 달콤한 반건시를 만들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합리화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올해 반건시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대박 반건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가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서 포장을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올해 시험 생산한 다양한 종류의 곶감과 기능성 곶감 연구가 지지부진해 사기가 떨어져 있는데 우연히 내가 귀감1호라고 명명하고 싶은 크고 때깔 좋고 달콤한 대봉 반건시가 선물처럼 나에게 찾아 온 것이다. 살다보니 가끔 이런 행운도 있구나 싶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