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또 12월 29일에 일본에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설을 맞이하러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인지, 평소보다 가족 단위로 여행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도 평소에는 혼자 이동하지만 이번에는 딸과 함께 왔습니다. 덕분에 함께 2019년을 되돌아보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셨습니까? 저는 2018년에서 2019년이 될 때보다 왠지 2020년을 맞이하는 올해, 자기의 삶을 더 잘 생각하며 한 해를 시작해야겠다는 느낌이듭니다. 2년 전 세계시민성교육을 배우며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류의 문제들을 알게 됐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자국을 중심으로 보면 그 모든 문제들을 다른 나라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지만 자신의 신원을 배제하고 그냥 인간이라는 속성으로 보게 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 남편을 위한 마음으로 혼자 왔는데 4명의 아들, 딸들을 낳으면서 제 삶의 이유가 한사람에서 둘로 그리고 6명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의 탄생에 앞서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탄생하는 생명의 행복을 위한 간절한 마음은 세계 공통적인 소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마음에 국경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꼭 있습니까? 새해를 맞이하며 TV를 보는데 2030년을 향해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문제들은 세계시민성에서 배웠던 내용과 같은 내용으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방송에는 일본사람만이 아니고 여러 나라 사람과 다문화가정의 출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만 봐도 이제 환경문제 해결, 과학발달 등은 한 나라만의 생각으로 해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던 것 같았습니다. 또 그 방송의 특징은 출연자의 나이가 다양했다는 점입니다. 옛날에는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가르침이 사회구성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의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학교의 교육방식도 많이 달라져 갈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지식만이 교육의 대상이 되면 한계가 있지만 학생들의 재능이나 아이디어 공유까지 교육의 대상이 되면 교육의 폭이 굉장히 넓어집니다. 또 사회중심의 구성도 꼭 나이 많고, 경험이 많고, 스펙이 많으면 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무시하면서 안 본 척 하지 않는 선을 추구하는 도전의식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상식도 중요하지만 반면 상식 안에서 구애받지 않은 새로운 발상이 세계를 바꿔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것임을, 결과의 혜택만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그 방송을 보고 자기의 2019년에 부족한 것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2020년에 자기 생활과 부모님을 돌봐야할 일을 어떻게 조절해서 해 나가야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는 농사를 짓고 있지만 한국에 올 때까지 화분의 꽃도 잘 못 키웠던 사람이라 별로 농사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귀농을 아주 잘 합니다. 당연히 옛날부터 해왔던 농사의 터 위에 새로운 개발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앞으로는 과거의 일꾼과 미래의 일꾼이 콜라보를 해서 어떻게 농사를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 지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하면 지진이나 태풍 때문에 피해를 많이 받았던 곳에 그 지역을 복구 하기위해서 봉사로 갔다가 그대로 그 지역에 정착했던 젊은이들이 그 지방 산업에 큰 영향을 주고 지역활성화에 성공했던 마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던 그 지역의 특징에,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지역발전에 도전합니다. 그 사람들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또 요즘 여러 분야에 발전을 기대시키는 하나가 AI(인공지능)의 발전입니다. 그 발전은 앞으로의 농가의 삶에 큰 변화를 시킬 겁니다. 농사뿐만이 아니라 그 발전이 인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조심해야 되는 것은 무엇이든 이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선으로도 악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기술이 인류를 위한 것으로 이용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저는 그 개발자체는 과학자 기술자에게 맡길 수 밖에 없지만 모든 개발의 가치는 결국 쓰는 자의 양심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양심은 인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국경을 넘은 인종을 넘은 개인의 가치관을 넘는 양심의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저는 2020년이 이 세계가 동일한 양심의 기준을 추구하는 때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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