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일에 일본에 왔다가 부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어머니가 옆에서 잠시 낮잠을 자고 계십니다. 조금 더 주무시길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자고 계시는 시간 이외에는 계속 이야기를 하셔서 해야 되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두 달 반 만에 왔는데 어머니의 알츠하이머증이 더 심해지셨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기억하는 시간의 간격이 더 짧아졌습니다. 아침을 드시고 아직 1시간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시간에 바로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십니다. 자신이 준비해야한다고 생각하셔서 아주 심각하게 걱정을 하십니다. “오늘 점심은 뭐로 할까? 재료가 아무것도 없었죠?”하면서 냉장고를 몇 번도 열었다가 “아이고 내가 아무것도 사놓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바보였나” 하십니다. 제가 안 그렇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계속 됩니다. “제가 해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라고 하면 “그래 네가 해줄래? 다행이다”라고 마무리되긴 하지만 이 대화가 점심이 준비되고 먹을 때까지 수십 번 반복 됩니다. 어떨 땐 중간부터 제가 딸이 아니고 어디서 왔던 언니가 되기도 하고 옛날에 같이 일을 했던 동료가 되기도 합니다. 혹시 그 동료가 사이가 안 좋았던 사이였다면 갑자기 화를 내시기도 하고 큰소리를 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손목시계가 없어졌다고 누가 가져갔다고 하셔서 누가 가져갔던 게 아니고 엄마가 치웠다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던 거라고 시계를 가져와 드리면 갑자기 울면서 “왜 나한테 그러냐 나는 나쁘지도 않은데” 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Never ending story 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계속 되면 저도 화가 나면서 힘들어지기 때문에 잠시 대화를 중단합니다. 5분정도 어머니가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도 대하지 않으면 이제 어머니도 조용해지시고 5분정도 더 지나면 그 전의 대화는 완전히 잊어버리시고 기분도 괜찮아지십니다. 치매인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있으려고 한다면 치매인 사람의 마음보다 자기 마음이 괜찮은지를 잘 살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는 치매만 걸리시고 몸에 특별히 불편한 것이 없어서 잘 움직이십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힘들기도 합니다. 제가 식사준비하고 있으면 자기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는가봅니다. 잠시 요리에 한눈판 사이에 식탁 위에 접시가 가득 준비 되어있습니다. 식탁을 보면 접시만 수십 개 나와 있을 때가 있고 수저도 3명밖에 안 먹는데 몇 개가 나와 있는지요. 다 치우고 10분후에 보면 다시 또 다른 것이 나와 있습니다. 3명밖에 없어서 3개씩 있으면 된다고 말씀 드리면 “2층에 계시는 손님에게도 드려야하는데 그래도 되나”라고 하시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도 많이 해봤지만 그때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저보다 더 힘들어하십니다. 어머니가 옛날부터 얄밉게 이야기 하시는 게 있어서 저랑 딸은 대충대충 넘어가는데 아버지는 넘어가지 못하십니다. 왜 그런지 말을 들어보니 옛날에 싸웠던 기억이라든가 안 좋았던 일들이 한이 되어 어머니가 하는 말에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풀어드리고 싶은데 그것은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빠 더 부드럽게 대하세요” 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알고 있으면서 못하는 거야 나도 자기 자신을 보고 답답해” 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치매인 어머니도 많이 신경 쓰이지만 제 과제는 아버지를 어떻게 편하게 해드릴까 하는 것입니다. 주변분들 중에는 제 고생을 생각해주시면서 “홈에 들어가게 하면 되지”라고 조언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두 분 다 남과 바로 친해질 수 있는 사교적인 분들이 아니라서 간단히 해결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매이신 어머니는 싫다고 하시면서도 계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아주 힘들어 하실게 보이고 혼자 생활하겠다고 하실 것 같아서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왔다 갔다 하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오빠나 올케에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게다가 부모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너 밖에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효도를 하고 싶어집니다. 밤에 두 분이서 아무 일 없이 기분 좋게 주무시는 날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두 분의 등이 굽으시고 작아진 뒷모습을 보면 두 분께서 살아 오셨던 시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현대의 발전 속에 잊혀져가는 것 같지만 이 시대의 기초를 만들어 주셨던 분들입니다. 평범한 행복을 원하셨던 것뿐이었지만 그 길은 변동이 많은 힘든 시대였습니다. 가끔 마음이 화가 날 때마다 자기의 부족함과 죄송함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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