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에 1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내를 볼 때마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아내가 없는 집은 늘 불이 꺼진 채로 깜깜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동안 필자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성격도 다소 까칠해졌고, 예민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몇 주 전, 아내가 입원해 있는 창원 소재 재활병원을 찾아온 며느리에게 반가운 마음에 냉장고 청소 좀 해달라고 말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용인에서 4시간 반을 달려서 온 아이들에게 보자마자 그 얘기를 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겠는가? 내 말이 끝나자 며느리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몇 초 동안의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서둘러서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싸늘한 분위기는 쉽게 걷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에 며느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며느리에게 느닷없이 냉장고 청소를 해 달라고 해서 아이들을 난처했고 불편하게 한 것을 사과했다. 그냥 섭섭했었다고는 했지만, 내 살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흰 너희들끼리 알아서 잘 살라는 투정 섞인 내용이었다. 아들 내외가 몇 달 후에 아파트로 이사를 가더라도 난 안 가보겠다는 내용까지 곁들여 가면서 협박(?)에 가까운 내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후회는 했지만,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생각으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장문의 답 글이 왔다. 역시 우리 새아기는 착한 며느리였다. 시아버지의 요청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될지 무척 난감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도 그 일로 인해서 맘이 늘 불편했지만, 어색하고 안 좋은 감정이 생기게 될까봐 필자가 섭섭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일을 언급하며 사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착하고 예쁘고 상냥한 우리 며느리에게 한순간의 섭섭함을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내 문자를 받고 나서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지나칠 정도로 주착을 떨면서 며느리에게 애정표현을 해왔던 필자의 모습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들만 둘을 둔 필자로서는 며느리가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며느리를 얻은 필자는 딸 열을 얻은 것 보다 더 뿌듯하고 기뻤었다. 남들은 며느리는 며느리라는 둥 아들은 장가를 보내고 나면 며느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둥 이런저런 말들을 했지만, 그래도 난 우리 며느리가 정말 예쁘고 자랑스러웠다. 금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아들과 함께 열심히 내일을 꿈꾸고 있는 우리 며느리가 고맙고 대견하기만 했다. 그런 아이한테 보자마자 난데없이 냉장고 청소 좀 해 놓고 가라고 했으니, 딸 가진 부모였다면 내가 그렇게 했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옛날 어른들은 이런저런 사정 안 가리고 며느리를 마구 부려 먹기도 했다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도 달라졌고, 시집살이라는 말도 없어지는 판에 필자의 실언이 며느리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 되었을까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찾아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더구나 어른 된 입장에서 며느리에게 불편한 심기를 털어놨다는 것이 보통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일로 많이 섭섭했다는 얘기를 한 것이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꿍하고 지나갔다면 평생을 며느리에게 섭섭한 마음으로 살게 될 테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시집을 오자마자 한 달 만에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에서 며느리의 고통은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어야 했는데, 눈치 없는 시아버지는 그러질 못했다. 스물일곱 살 새아기는 올 때마다 국이며 찌개를 만들어서 봉지 봉지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어주면서 식사 잘 챙겨 드시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그런 아이에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때문에 큰 상처를 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친한 사이일수록 언행에 각별히 조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깨가 쏟아져야 할 때에 시댁 일로 마음이 상해 있을 새아기에게 어떻게 위로와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항상 고맙고 미안한 우리 새아기, 스물일곱 동갑내기 신혼부부로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이 아이들에게 더 너그럽고 넉넉한 시아버지가 되어야겠다. 몇 차례를 할퀴고 지나간 태풍들 속에서도 탱글탱글한 감을 달고 서있는 저 감나무처럼 말이다. 6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아직도 성숙하지 못했으니, 내 인생은 언제나 철이 들까? 지리산을 닮은 듬직하고 포근한 그런 시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 그릇을 넓혀가는 노력을 해 봐야겠다. 이 가을에 부끄럼이 없는 행복하고 토실토실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 이젠 가을을 닮은 튼실한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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