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사건이 발생했다. 엊그제 초복 날 아침 현관에 누워있는 참새 한 마리가 아내를 놀라게 했는데 오늘 아침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났다. 나는 엊그제 참새 사건의 진범으로 수리를 지목했고 아내는 길냥이 서리를 의심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사건이라 자칫 미궁에 빠질 참이었는데 오늘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이번에는 아내와 나의 의견이 일치했다. 수리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고, 서리가 진범으로 지목되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밤새 현관에서 잠을 잔 수리를 아침에 바깥으로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참새를 던져 놓은 게 아내에 의해 목격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리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어제 저녁을 얻어먹은 것에 대한 감사와 우정의 표시로 주는 선물이오~”서리는 그냥 냐옹~ 했지만 분명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고 데크에서 주저주저하며 알짱거리는 폼이 만일 아침 식사를 제공해준다면 사양하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사료를 한 그릇 담아 현관 안에 두고 자리를 피해주었더니 서리는 용감하게도 방충망 아래로 밀고 들어와 우적우적 먹었다. 그러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후다닥 빠져나가기를 두어번 했고 신변에 위협을 느꼈는지 어느 순간 잠적했다. 지난 주 수리가 토하고 열이 나서 진주 동물병원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열은 이제 내렸고 움직임도 좋아졌는데 밥을 며칠째 먹지 않는다. 고양이는 36시간 먹지 않으면 신장과 간이 손상되어 위험해진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수리에게 사료나 고등어캔을 먹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수리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수리는 기력이 쇄약해진 것 같지가 않다. 이 녀석이 요즘 종일 뒷산으로 마실 다니더니 뭘 잡아먹고 있는 것일까? 어제와 그제는 주말이라 펜션 손님이 단체로 왔다. 매년 이맘 때 오는 단골손님들인데, 수리가 데크 옆 활짝 핀 백합아래 누워있는 걸 보고는 고양이와 백합은 상극이니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깜짝 놀라 인터넷에 고양이와 백합으로 검색을 해보니 정말 그런 정보가 있다. 만일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수리가 이유 없이 토하고 열이 난 게 수리 잠자리 바로 옆에 최근에 활짝 핀 백합 탓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지난 보름간 정원에 엄청난 향기를 뿌렸던 백합을 꺾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연쇄사건의 범인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서리는 멀리서 보면 수리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닮았다. 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뜯어보면 다르다. 서리 얼굴에는 흉터가 제법 있다. 야생에서 길고양이로 살아가며 먹이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데, 인디언 전사처럼 용맹스러워 보인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수리의 밥을 몰래 먹는 걸 보고 내가 밥을 한 그릇 담아 따로 주었더니 요즘은 거의 매일 온다. 밥은 먹으러 오지만 절대로 곁을 주지는 않는다. 언제라도 달아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눈칫밥을 먹는다. 처음 왔을 때는 한줄기 등뼈가 보였는데 요즘은 제법 살이 붙었다. 고양이가 쥐나 새를 잡아 선물하는 것은 굉장한 호의의 표시라고 한다. 길냥이 서리는 밥을 얻어먹은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