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반려동물 용품 샾에 가보면 고양이를 위한 장난감이 아주 다양하게 진열되어있다. 애완견을 위한 장난감은 몇 가지 안보이고 죄다 고양이를 위한 것들이다. 나도 고양이 장난감을 사러 간 적이 있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골라야할지 몰라 한참 망설였더니 주인이 요즘 잘나간다는(비싼) 걸로 하나 추천해주었다. 애완 고양이 안내서적에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는 일정시간 집사가 장난감 같은 걸로 같이 놀아주라고 권하고 있다.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장난감이 있으면 더 좋기는 하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장난감을 굳이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 고양이는 어떤 것도 장남감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포장 끈이나 종이 쪼가리 등등 아무 거나 가지고도 찢어발기며 잘 논다. 실내에서 키우던 수리를 지난봄부터 마당으로 내 보냈다. 농사철이 되어 집사인 내가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혼자 집안에 둘 수가 없었다. 거실에 있던 고양이 탑을 현관 입구 데크로 옮겨주고 마당으로 내보냈는데 다행히 수리는 집을 벗어나 멀리가지 않았다. 고양이는 언젠가는 집을 나간다는 말을 들었지만 중성화 수술까지 한 수리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답답한 실내에 있다가 넓은 바깥세상으로 나간 수리는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돌담 위를 활주로처럼 질주하다 감나무 위로 날아오르고 오래된 모과나무를 고양이 탑처럼 오르내렸다. 실내에서 생활할 때는 소파를 수시로 스크래치해서 말리곤 했는데 마당으로 내 보내니 나무란 나무엔 다 흔적을 남겼다. 수리는 사람에게 낯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집에 있는 개 두 마리(사랑이와 오디, 셔틀랜드 쉽독 모녀)와도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성장기를 같이 보내지 않은 고양이와 개는 개와 고양이 사이일 뿐이어서 오디가 가까이 다가오면 수리는 앞발을 쳐들고 싫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했다. 근데 어떤 때는 수리가 고양이가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내가 감나무 과수원에 일을 하러 가면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따라다니고 심지어는 아내랑 저녁 산책을 나가면 밥 먹다가도 따라 붙는다. 따라오지 못하게 야단을 쳐도 거리를 두고 슬금슬금 따라오면 어쩔 수가 없다. 시골 마당은 넓고 정원에는 화초들이 많아 꽃이 예쁘게 피면 나는 사진을 자주 찍는다. 그런데 내가 정원에 꽃 사진을 찍으면 수리가 따라다니며 꽃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전속모델 같다. 수리가 데크 난간에서 장미 향기를 맡으며 찍은 사진들을 보면 영락없는 표지모델이다. 하지만 이런 사진들에 연출은 하나도 없었다. 수리는 말이 필요 없는 베테랑 모델인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수리에게 주어진 냥작이라는 작위는 정말 잘 어울린다. 만약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수리는 단연 주연배우 깜이다. 수리는 옷도 잘 입었고 인물도 좋다. 호랑이 옷을 입은 수리가 하얀 장화를 신고 데크 위를 시뿐사뿐 걸으면 칸 영화제에서 잘생긴 주연배우가 레드카펫을 걷는 것 같다. 이건 절대로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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