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출판사에서 수필집을 내자는 연락이 왔다. 그동안 SNS에 포스팅한 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이었는데 나는 얼씨구나~ 하고 바로 계약을 했다. 전문 작가가 아닌 농부가 책을 낸다는 것은 솔직히 고백컨대 내가 생산한 농산물 특히 곶감 홍보를 (광고비 안들이고)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기 때문에 결코 망설이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내가 SNS에 포스팅한 글은 순수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농산물을 팔고자 하는 음모를 숨기고(가끔 일부러 살짝 드러내고) 쓴 글이 많기 때문에 책이 많이 팔리면 내가 만든 곶감도 홍보가 될 터였다. 야홋~ 선 인쇄가 들어오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가 술술 풀리는 기분에 입이 자꾸 벌어졌다. 계약을 할 때는 곶감 출하할 즈음 책이 나온다고 했기에 은근히(내심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내가 보낸 원고에는 곶감과 관련해서 SNS에 포스팅한 글들이 많이 들어있어 미래의 독자가 책을 읽고 곶감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기에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아보였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지난 9월 하순에 원고를 보냈고 곶감은 12월 초순에 출하가 시작되니 출판사에서 곶감 출하에 맞춰 책을 디자인하고 교정보고, 편집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었다. 실제 작업은 생각처럼 착착 진행되어 기대했던 책이 곶감과 같이 출 판되지 않았다. 두고두고 읽히는 책만 만든다는 출판사의 생각은 얼렁뚱땅 책을 내어 곶감을 홍보하고 싶은 농부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책을 디자인 하다 보니 사진이 없어(내가 보낸 사진은 똑딱이 디카로 툭툭 찍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책에 수록하기엔 턱없이 용랑이 작았다) 출판사 사장이 사진작가와 함께 일박이일 어려운 걸음으로 내려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수년 전에 내가 페북에 포스팅한 글까지 발굴(?)해내어 페이지를 늘렸다. 두고두고 읽히는 책을 만드는 과정이었지만 나로서는 곶감이 막 출하되는데 책이 나오지 않자 더 이상 입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좋은 책을 만든다는데... 요즘은 아무리 재밌고 유익한 책이라도 두꺼운 책은 잘 안 팔린다고 한다. 물론 책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쉽게 읽고 던질 수 있게 페이지 수를 대폭 줄인 스몰 북이 대세라는데 출판사에서 의욕적으로 원고를 추가하다보니 페이지 수가 너무 많아져 두 권도 족히 만들 만한 분량이 되어버렸다. 해서 아예 처음부터 두 권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1권을 먼저 내고 반응이 좋으면 준비된 2권을 낼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장편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를 두 권 동시에 내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는데 어쨌든 저자 입장에서는 두 권을 동시에 낸다는 의견에 매력을 느꼈는데 출판사에서 1권을 먼저 내어보기로 결정했다. 그 밖에도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 유감스럽게도 곶감 출하에 맞춰 발간을 하지 못했지만 늦어도 곶감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연말이나 늦어도 연초에는 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내 생각이었다. 책은 연말에도 나오지 않았고 연초에도 나오지 않았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열정이 얼른 책을 찍어내어 부차적인 이득을 염원하는 농부의 간절한 소망을 덮어버렸다. 입가에 남겨두었던 미소가 사라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책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출판사에서 만드는 거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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