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인 함양에 벚꽃이 만발하고 동창회가 시작되는 시절이 되면 아내는 들뜨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동창회날은 1박2일로 먼 함양 길을 다녀오면서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필자는 초등학교를 4군데를 다녔다. 한 번의 전학 두 번의 분교에 따른 것인데 1960년대 서울의 초등학교는 취학연령에 달한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을 수용하기 위해 2부제, 3부제 수업까지 하며 버티다 분교(分校)를 하고 애먼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애매한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했다. 형편이 그러다 보니 어릴 적 친구라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필자로서는 귀촌한지 제법 되었지만 함양의 초등학교 동창회 풍경이 조금은 낯설고 많이 부럽다.
50여 년 전에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하는 일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만사를 제쳐 놓고 모교 운동장에 모여 밤을 새워가며 정을 나눈다. 먼 길을 달려온 도시 친구들의 향수와 모임을 준비하는 고향 친구들의 정성을 헤아려 보면 고대 고우회, 해병대 전우회, 호남 향우회에 함양 동창회를 넣어 대한민국4대 모임이라 칭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향우회든 동문회든 엄청난 사회변혁을 겪으면서도 유대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은 ‘베이비부머’들이 그 모임의 중심에 정서적으로 뭉쳐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정책이 시행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700여만 명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쳐 1997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으며 숱한 정치적 기로 마다 결정권을 행사하여 나라의 방향을 바로잡은 세대이다. 청년기든 중·장년기든 항상 주인공이었던 그리고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던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대인데 일벌레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부를 축적하고 자녀교육에 올인하여 한류를 만들어낸 젊은이들을 키워낸 어버이들이기도하다.
그뿐인가? 60세가 넘어서도 부모의 부양과 자식들의 주거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장한, 도전하고 성취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대,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라고 호언하고 “이만큼 먹고 살게 된 게 다 누구 덕인데”라고 장담하는 세대로 한국의 베이비부머에 비하면 원조 격인 미국의 베이비부머나 일본의 단카이세대는 부자나라에서 태어나 소비만 하다가 고령화 사회의 온갖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글자 그대로 ‘인구덩어리’에 불과하다.이제 베이비부머의 맏이인 55년생 양띠들이 내년이면 국가공인(國家公認) ‘노인(老人)’이 된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노인이 되면서 우리나라는 2026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며 사회경제적으로 어두운 전망들을 하고 있지만 강건하고 능력 있는 700만 베이비부머들이 노인이 되면서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노인전성시대(老人全盛時代)가 개막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강변일까?
다만 빈곤이나 고독과 질병 같은 노인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언제나 주인공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이 수의 우위를 앞세우고 노인이라는 권위를 더해 “어디서 감히”하며 젊은 세대를 윽박지르거나 “아직은 우리가”라며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나 국가정책에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노인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꼭 읽어야 한다는 일본의 여류작가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戒老錄)의 제1장은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라고 시작한다. 힘들여 오늘의 성취를 이룬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이 “늙으면 뻔뻔해지는 비열한 꼰대”가 되지 않고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하여 후배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는 멋진 노인시대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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