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노란색이라고 노래하는 꽃다지와 봄은 하얀색이라고 주장하는 냉이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은 논둑 밭둑 그리고 강둑에서 전면전으로 번졌다.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꽃다지는 노란 꽃대를 마구마구 올리고 냉이는 하얀 꽃을 구름처럼 피웠는데, 하느님은 꽃다지 편이었다. 하느님은 냉이를 맛있게 만들고 꽃다지는 예쁘게 만들어서 봄처녀가 냉이만 모두 솎아내게 했다. 사월이 오기 전에 냉이는 사람 뱃속으로 다 들어가고 꽃다지는 봄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감나무 밭둑 한 켠에는 광대나물이 광대처럼 고개를 쑤욱 내밀고 봄맞이 한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광대를 닮았다고 광대나물이라 불리는데 먹을 것이 지천인 요즘 광대나물 먹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어쩌다 먹어봤다는 사람 말을 들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고 한다. 조금 있으면 밭 가장자리에 일부러 심어둔 금낭화 새순이 올라올 것이고 굳이 심지 않아도 흔한 원추리는 이미 새순을 올렸다. 원추리 어린 순은 살짝 데쳐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아삭아삭 감칠맛이 난다. 금낭화 순은 나물 중 으뜸이라고 하는데 이건 아는 사람만 안다. 맛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 못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을 정도라 한다. 먹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맛난 나물이 지천인 요즘 꽃다지도 나물로 먹는다는데 논둑, 밭둑, 묵정밭을 노랗게 채색할 정도로 흔하지만 순이 워낙 작아 가족 한 끼 찬거리 정도 캐는데도 허리가 아프다. 이맘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물은 머위다. 이곳 사람들은 머위를 머구라고 하는데 쌉싸름하고 아삭해 입맛 돋구는데 최고다. 맛도 좋지만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하니 당분간 식탁에 꾸준히 올려 우리 집 엥겔지수를 대폭 낮추어보려고 한다. 지난 주말엔 꽃바람이 나서 아내랑 광양매화마을에 갔다가 차가 막혀 꽃구경은 못하고 차 구경 사람구경만 실컷 하고 왔다. 오는 길에 그냥 올 수는 없다하여 산동 산수유마을로 차를 돌렸는데 거긴 더 막혀 근처에도 못가고 겨우 빠져나왔다. 매화를 보려면 축제하기 전에 일찍 가는 게 좋다. 매화는 꽃이 활짝 피기 전에도 꽃이 볼만하다, 산수유는 축제 끝나고 가도 늦지 않다. 산수유는 늦게까지 꽃이 피기 때문에 축제가 끝나고 사람이 없는 때를 골라 가면 여유있게 즐길 수 있다. 꽃구경을 하려면 이렇게 시기가 중요한데 봄바람에 들떠 생각없이 나서면 고생만 하게 된다. 꽃축제 기간에는 항상 느끼는 거지만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이 피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엄천골에도 꽃이 많이 있는데 뭐하러 멀리까지 차를 타고 구경을 하러 갔나 싶다. 집 주변을 산책하는데 엄천강 둑에 생강꽃이 눈길을 끈다. 향기가 달콤하고 진하여 꽃가지를 하나 꺾어 코를 대고 킁킁하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꽃을 따서 콧구멍에 밀어 넣었더니 코, 입, 목, 눈 그리고 뇌의 구석구석까지 향기터널이 한방에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다. 생강 향기에 취하여 느긋하게 산책을 하고 집에 오니 현관 데크에 냉이가 한 봉다리 올려져있다. 어느 봄처녀가 갖다 놓았을까? 안 그래도 뒷산에 머위 캐러 쑥 캐러 갈 참이었는데 냉이까지 한 봉다리 생기니 봄을 배달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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