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다는 연락을 받고 화단으로 마중 나간다. 호미 하나 들고 간다. 이맘 때 올라오는 새싹은 잡초인지 화초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어린 싹은 다 화초처럼 보여서 일단은 지켜보게 만들지만 나중에 잡초로 확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열흘이나 보름 쯤 뒤에 (잡초네~ 하하 역시 잡초였어~ )하며 파내지만, 영리한 잡초는 이미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쬐그만 꽃을 피우고 씨앗까지 퍼트리고 난 뒤다. 그래도 클로버처럼 쉽게 구분이 가는 것이 아니라면 판결이 날 때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다. 잡초는 법의 이런 맹점을 교활하게 이용하여 꽃도 피우고 씨앗도 퍼트리는 것이다.
크로커스는 이미 꽃을 활짝 피웠고, 수선화는 노란 꽃 주머니를 달았는데 주머니가 매일 두둑해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튤립, 기간티움 같은 구근들도 힘차게 손바닥을 올렸고 작약도 붉은 고사리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백합이나 다알리아처럼 아직 순을 내밀지 않은 구근은 건망증 심한 농부의 호미에 종종 수난을 당한다. 퍽~하고 찍어낸 뒤 (아이코 이게 뭐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하면 이미 늦었다. 그래서 이맘 때 화단 일은 고고학자가 붓으로 유물을 발굴하듯 조심스레 해야 한다. 잡초 솎다 엉뚱한 구근 찍지 않게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해야 하는 것이다.
꽃이 잘 안 되는 그늘진 화단은 민들레가 점령했다. 민들레, 이것은 잡초인가? 화초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끈질긴 놈은 없었다. 나는 심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씨앗이 날아와 민들레 제국을 만들어 놓았다. 한 때는 민들레의 수수한 매력에 빠져 일부러 화분에 옮겨 꽃을 즐기기도 했지만 워낙 생명력이 강하고 지천으로 나는 것이라 이제 일부러는 심지 않는다. 민들레는 꽃도 꽃이지만 잎을 뜯어 쌈으로도 먹고 전도 부치고 된장국에도 넣어 먹기에 나는 민들레에게는 좀 관대한 편이다.
지난해엔 씨앗을 구해 심은 겹접시꽃이 제국을 이룰 정도로 세력이 강성했다. 씨앗 한 톨의 힘 대단했다. 화단에 있던 사랑초는 돌담으로 내쳤는데 오히려 더 잘 자랐다. 사랑의 힘 대단했다. 친구가 나눔해 준 카네이션은 해를 거듭할수록 꽃이 풍성해졌다. 세월의 힘 대단했다. 콩알만한 자구를 얻어 심은 카라가 삼년 만에 꽃을 피웠다. 그해 바로 꽃이 피는 줄 알고 심었는데 삼년이 걸릴 줄 알았으면 심지 않았을 거다. 지난 해 내가 카라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걸 몰랐기 때문. 무식의 힘도 대단하다.
잡초를 솎아내는데 치렁치렁한 무스카리 묵은 잎 사이로 보라색의 꽃방망이가 올라오고 있다. 무스카리는 포도송이 달리듯 주렁주렁 꽃이 핀다. 꽃인데 열매처럼 보인다. 작은 모종 하나 업어와 심은 것이 올해로 삼년 째가 되나보다. 세력이 제법 커져 뾰족뾰족한 성이 솟는 것처럼 거창하게 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봄마당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개부랄이다. 이 개불알꽃은 이름이 거시기하다고 봄까치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이름만 이쁘면 뭐하나? 아무리 봐도 개불알인데, 눈 닦고 다시 봐도 개부랄인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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