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이던 땅위로 연초록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뭉툭한 가지 끝에는 화사한 꽃이 피는 3월이다. 삶의 여정을 오롯이 마친 꽃들은 열매를 맺어 다음 생을 준비하지만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미처 여정을 마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축복 속에 태어나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보낸 후 죽음을 맞이하지만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그 죽음이 일찍 다가오기도 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무겁고 슬프다. 사람들의 죽음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수많은 죽음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율은 인구 10만명당 24.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평균보다 2배나 높은 세계 최고의 오명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교통사고나 산재, 재난을 모두 합친 것보다 3배에 이르는 것으로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다른 생명체에 비해 지능적으로 뛰어나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을 일컬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2019년 현재 우리는 학업 스트레스, 높은 실업율, 과도한 노동,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높은 노인 빈곤율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삶을 포기할 만큼의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한번쯤은 죽음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나 혼자 외톨이라는 생각,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거라는 극한 생각 속에서도 사람들은 ‘나 힘들어’, ‘내손을 잡아줘’라는 저마다의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미처 그 신호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자살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심각한 사회문제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오랜 고통을 남기고 자살율 증가로 인한 사회적 손실 또한 막대하다. 이를 위해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확산’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함양군에는 보건소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자살예방사업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확보가 필요하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이 이런 독백을 했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타인의 기준이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나로 인해 나의 가치를 잃지 말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사랑하자. 세상 모든 것들에는 각자 쓰임이 있기 마련이다.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그 따뜻함에 봄이 부쩍 깊어졌다. 온 세상 구석구석 따뜻한 햇살이 퍼져 꽁꽁 얼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기를 바란다. 생명은 고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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