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陰陽五行의 또 다른 얼굴인 계절의 순환과 이치를 ‘칡’이라는 식물과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통해 보다 쉽게 이해해 본다. 생장화수장生長化收藏은 지구에 작용하는 다섯 가지 상象으로 봄에 싹이 돋아 자라고(生), 여름에 잎이 나며 무성해지고(長), 다시 무성한 힘이 정지되어 큰 마디의 전환점을 이루고(化), 가을의 찬바람 속에 열매를 맺고(收), 겨울이 되어 씨앗은 땅속에 떨어져 생명력을 내부로 모았다가(藏) 다시 봄이 되어 뛰쳐나오는(生) 순환으로 우주의 질서를 보여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봄이 되면 죽은듯한 가지에서 싹을 틔우는 힘이 목기木氣로, 생기를 일으켜 뻗게 해서 빼어나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해지는 기운이 화기火氣로, 활달豁達하게 자라서 사방으로 무성하게 펼치는 작용이 있다. 늦여름이 되면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으면서 안정감과 평화로운 기운을 발하는 기운이 토기土氣로, 풍만하고 비육하게 살이 오르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 가을이 되면 밖으로 쏟아낸 기운이 열매에 모여 맛이 들 듯 흩어진 몸의 기운을 수렴하는 기운이 금기金氣로, 정기를 거두어 밖으로부터 안으로 단단하게 뭉치며 밀폐시키는 작용이 있으며, 겨울이 되면 뿌리에 기운을 저장하여 겨울을 견뎌내고, 봄에 새로운 싹을 틔울 힘을 보관하는 기운이 수기水氣로, 정기를 속으로 응축凝縮하여 견고하게 맺히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 칡은 여름에는 덩굴과 잎에 물이 가 있기 때문에 뿌리는 몹시 공허해서 시골에서는 여름에 캔 칡뿌리는 ‘알이 빠졌다’고 한다. 실제 여름에 캐면 뿌리가 홀쭉하고 섬유질만 남아 있어 단맛이 나지 않는다. 가을이 지나 겨울에 접어들어 물이 뿌리 속으로 다 들어가고 잎은 말라버릴 때 비로소 녹말 알갱이들이 꽉 차게 되면서 통통해지며 단맛을 낸다. 칡뿌리처럼 천마나 더덕 등의 뿌리를 이용하는 식물의 약성도 똑같은 원리로 적용할 수 있다. 결국 여름의 실체는 내부에서 외부로 확산되는 기운으로 추상하고, 겨울의 실체는 외부에서 내부로 응축하는 기운으로 추상한다. 그리고 오래전에 필자가 읽었던 “신문으로 배우는 실용한자 ‘落城’편”을 보면 ‘落’은 ‘떨어질 낙(락)’자로 글자를 살펴보면 초두머리(艹, 풀이나 나뭇잎)와 洛(강 이름 )으로 이루어진 문자로, 물에 꽃잎이나 나뭇잎 등이 떨어지는 것을 뜻한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잎이 떨어져야만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만일 잎을 떨구지 않고 겨울을 맞이했다가는 굵고 단단한 외피를 가진 나무줄기와는 다르게 그대로 추위에 노출된 잎에서 전해지는 한기로 인해 뿌리까지 얼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봄에 돋아나 여름에 활짝 펼쳐졌다가 가을에 지는 나뭇잎인 단풍은 실은 동일한 자연의 섭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태어남과 성장 그리고 성숙과 완성을 거쳐 다시 생명을 되살리려면 반드시 쇠락을 겪어야만 하는 ‘순환’의 이치를 보여준다. 나무로서는 머지않아 닥쳐올 겨울을 위해 당시의 무성했던 나뭇잎을 이젠 떨구어 주어야 하는 때인 것으로, 그것은 때를 놓치지 않고 한해 농사를 수확하는 농부와 같다. ‘이로울 이利’란 벼禾에 칼刀을 대는 것으로 벼를 베어야 할 때에 베어 수확치 않는다면 찬 서리에 그대로 벼는 땅위에서 얼어 죽어 버릴 것이다. 나무는 잎을 떨구어 내어 겨울을 그 단단하고 질긴 외피 안에서 웅크린 채 버티어 낸다. 그렇게 떨구어 낸 잎들은 다시 거름이 되어 나무로 되돌아가는데, 길고 두려운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왔을 때 나무가 새순을 싹 틔우고 잎들을 펼치며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순환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낙엽落葉은 그저 쓸어내야 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다음 사이클의 가장 요긴한 힘이 되어주는 것이란 사실은 참으로 의미 깊은 섭리이다. 결국 ‘落’이란 글자에는 ‘떨어지다’라는 뜻 외에 ‘완성하다, 이루다’라는 뜻도 있으니, 이는 나뭇잎을 떨구는 그 시기로 인하여 사이클의 완성과 성취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들을 보는 것은 잎들의 숭고한 희생을 보는 것이다. 참고로 만물의 결실을 맺게 하는 가을은 오행 중 금金의 기운이 가장 강한 금왕지절金旺之節이라고 한다. 살릴 것은 살리고, 죽일 것은 죽이는 살벌殺伐한 기운이 감도는 계절, 이것이 바로 금金이다. <적천수適天髓>에서는 가을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고 하고, 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는 종혁從革이라고 했다. 나라에서 범죄인을 다스릴 때 여는 것이 추국청인데, 이때의 ‘추’가 바로 가을 추秋이다. 그러므로 가을金은 모든 것이 열매 맺는 시점에서 추살과 불의를 냉정하게 처벌하는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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