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듣는 것이 소원인 아줌마가 남편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테니 한 번 맞추어 봐요.” 라고 했다. “그래 무슨 문제인데 그렇게 심각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라고 한다나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무슨 바다일까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답을 못하자 온갖 애교 섞인 소리로 힌트를 주었다. “이럴 때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있잖아요” 그러자 남편은 답을 알았다는 듯 반면에 웃음을 지어면서 자신있게 하는 말. “열--바다해!” 사랑해와 열 바다해는 정반대이다.
집착과 몰두는 다르다. 집착은 한 가지에 빠져 주변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고, 몰두는 한 가지에 집중하되 앞뒤좌우 주변도 함께 살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착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지만, 몰두는 언제든 누구든 멋진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
구별과 차별은 다르다. 차별은 등급이 지게 가르는 것이고(discrimination), 구별은 성질 또는 종류에 따라 서로 따로 따로 구분하는 것(classification)을 의미한다. 즉, 남자와 여자는 구별되어야 할 대상이지 차별되어야 할 대상은 아니다. 특히 구별이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 구별이 잘 된 나라는 잘 살고, 구별이 잘 된 직장, 그리고 가정은 화목하다. 자신의 할 일과 타인의 할 일을 잘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비난과 비평은 다르다. 비난은 미워하는 감정을 갖고 상대를 몰아 정죄하는 것이지만 비평은 관심을 갖고 상대를 바로 세워주려는 것이다. 비난은 감정을 갖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무너뜨리기 쉽지만 비평은 상대를 존중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똑바로 하고 있는데 너(당신)는 왜 그 모양이야?” 혹은, “나는 아는데, 너는 모른다”는 식의 태도는 교만한 태도이다. “우리 이런 식으로 해 나가는 것이 어떨까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며, 친절하고 성숙한 태도입니다.
분별과 판단은 다르다. 분별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지만 판단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바르게 분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어둠과 싸우는 세상에서 지혜롭게 선악을 분별해야 하며 옳고 그른가를 늘 분별해야 한다.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속을 수 밖에 없다. 분별하지 못하도록 세뇌시키거나 백성을 우민화시키는 것은 독재자가 사람을 이용하고 자기 맘대로 조종하기 위한 것이다. 사랑과 하나 됨은 중요한 가치이다.
예수께서 원하시고 기도하신 사랑은 제자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었다. 진리 안에서 하나 되고 사랑하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 된다는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이 진리이다. 작금에 여야가 국민의 민생문제를 뒤로하고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는 야를 품고 야는 비난과 비판만 하는 것 보다 대안과 새로운 정책으로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을 제시함으로 국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으며 한다. 거기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 이라는 명언처럼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가지고 국민을 두려워하면서 섬기는 정치인들이 되었으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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