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봄이다. 열여덟 번째 맞는 엄천골의 봄은 눈으로 볼 수 있다. 묵정밭에 꽃다지 올라오고 개불알꽃 피고 양지바른 곳에는 냉이가 먹기 좋게 올라왔다. 화단에는 수선화 초록 혀를 쏘옥 내밀고 튜울립도 앙증맞은 손바닥을 펼친다. 돌담에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터지고 미색의 매화꽃 팝콘이 달콤해 보인다. 사방에서 들리는 개구리 합창은 귀로 듣는 봄.
해마다 개구리 합창 소리 들리면 나는 감나무 전정을 한다. 매년 감나무 가지를 쳐내며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하는 일이 이 일이다. 지난해엔 내가 낙상사고로 다치는 바람에 한 해 작업을 건너뛰었더니 감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버려 가을에 수확할 때 애를 먹었다. 높은 가지에 달린 감을 수확하는 일은 항상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감이 떡하니 달려있는데 안 본 듯이 포기할 수가 없어 아깝다고 사다리를 타거나 나무에 올라가다보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올 봄에는 미연에 모든 위험을 없애버리고자 전정 작업을 아주 과감하게 하려고 한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감나무 전정은 삼분의 일을 잘라내야 제대로 하는 거라 한다. 그런데 막상 톱과 전정가위를 들고 살아있는 나무를 마주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삼분의 일을 잘라내기는커녕 잔가지만 건드리고 만다. 그래서 전정 작업은 본인이 하지 말고 남에게 맡기라고 한다. 남에게 맡기되 평소 나에게 감정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면 더 좋고, 최소한 성질이 더러운 사람에게 맡기면 실패확률이 낮다고 하다. 하지만 산골 마을에서 이런 모진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 사람은 끊고 맺음이 분명한 사람이라 제대로 잘라주겠다 싶어 맡겨보면 잔가지 정리 수준으로 해놓고선 “하다 보니 너무 많이 쳐 버렸네~ 미안하이~ 올해는 수확이 많이 감소할 걸세~ 그렇게 아시게~”한다.
재작년에는 고가의 충전식 전동가위를 빌려 나름 대대적으로 전정 작업을 한다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마음만 대대적으로 먹고 정작 일하는 손은 소소적(?)으로 한 것 같다. 잘라내야 할 것은 굵은 가진데 작은 가지만 잔뜩 잘라낸 것이다. 살짝 갖다만 대도 쓱쓱 잘라주는 전동가위를 쓰는 재미에 요란만 떨고 말았다. 그래서 올해는 제대로 해내기 위해 전동가위는 쓰지 않고 손톱으로 다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굵은 가지를 과감하게 베어내겠다는 것이다. 임전무퇴, 나는 전사가 되어 나무의 높이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할 것이다.
사실 감나무 전정은 어제부터 할 작정이었는데 미세먼지로 목이 칼칼해서 오늘로 미루었다. 그리고 오늘은 꼭 하려고 했는데 미세먼지에 내가 살아야겠다 싶어 내일로 미루었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기 싫은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계속 핑계를 찾고 있다. 미세먼지가 먼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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