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리는 게시물을 보면 꽃소식이 많다. 집 주변에서 만난 작은 풀꽃을 비롯하여 멀리까지 직접 찾아가서 본 움이 튼 꽃봉오리나 동백, 매화, 갯버들, 히아신스 등 다양한 꽃들이 보인다. 보고 있으면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고 그 향기가 코로 스며드는 듯하다. 얼마 전 나도 집 주변에 있는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 산에 올랐는데 햇볕이 따스하게 잘 비치는 밭 가장자리에 매화꽃이 피어 나를 환영해 주었다.
이름 없는 작은 풀꽃이든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 꽃이든 꽃은 저마다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꽃에서 나는 좋은 냄새인 이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평안을 주고 기쁨을 준다. 그런데 향기는 꽃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난다. 사람의 향기는 주로 상대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거나 허물을 감싸주고 위로하는 것,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직접 몸으로 헌신하는 등 그 사람의 언어나 행위를 통해서 나타난다.
최근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작품 중에서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요정』을 읽었다.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성실성 그리고 언어의 힘과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주인공은 십대 중·후반의 파데트와 랭드리이다. 파데트는 아주 불행하게 살았는데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려고 사람들에게 밉살스런 말씨와 거친 행동을 하여 경멸의 대상이 된다. 반면 랭드리는 괜찮은 집안의 쌍둥이 중 동생으로, 성격이 밝고 건강하며 일도 잘하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청년이다.
어느 날 파데트는 랭드리에게 두 번의 도움을 주고 감사의 표시로 축제 날 자기와 일곱 번의 억지 춤을 추게 하지만 사람들의 무시와 조롱 때문에 울게 된다. 이에 랭드리가 편을 들어주게 되고 그 날 밤 둘은 오래 동안 대화를 한다.
여기서 랭드리는 파데트가 왜 또래 아가씨가 받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지 몇 가지를 알려준다. 그에 의하면 파데트는 악의가 있는 말을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말을 하며, 남자같이 거칠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잘잘못을 얘기하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그녀는 오히려 고맙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늘 그런 야단을 들었지만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진심으로 다정하게 얘기를 해 줬어”라고. 그리고 이후 파데트는 말과 행동이 바뀌고 사랑의 요정이 되어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삶을 산다.
경멸의 대상이었던 파데트가 이처럼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랭드리의 진심어린 따뜻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랭드리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녀를 경멸하고 파데트가 사람들에게 말했듯이 했다면 그녀는 오히려 성을 내고 둘의 대화는 끊겼을 것이다. 하지만 랭드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의 대답처럼 ‘진심으로 다정하게’ 대화를 이끈 것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남에게 상처를 주어 아프게 하는 독한 말이나 그저 사탕처럼 달콤한 입에 발리고 듣기 좋은 감언이설이 있다. 그리고 풀이 죽어 있을 때 용기를 주는 말, 허물을 감싸주고 덮어 주는 따뜻한 말, 외롭고 슬플 때 위로해 주는 말,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말들이 있다. 전자의 말들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난다. 그러나 후자의 말들을 들으면 꽃향기를 맡을 때처럼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바로 이런 말에는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화향백리, 인향만리’ 라는 말은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나는 ‘언향만리’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향기로운 말은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다시 말해서 향기로운 말은 듣는 이의 가슴에 씨앗을 뿌리고 어린 순이 자라듯 싱싱하게 자라 사람의 행동과 삶까지도 멋지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향기로운 말에는 힘이 있고 생명이 있다. 향기가 없거나 악취 나는 말로 사람을 죽이지 말고 향기 나는 말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 보자. 랭드리가 파데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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