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코에 바람도 쏘일겸 진주 이마트에 장보러 갔다. 평소엔 함양읍에서 장을 보는데 멀리 대형마트까지 나들이 삼아 가서 먹거리외 이것저것 잔뜩 샀다. 쇼핑할 땐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카드를 긁을 땐 1도 즐겁지 않았다. 아뿔싸~ 이거 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하며 영수증을 훑어보았는데 (계산 착오이길 바라며) 잘못된 건 하나도 없고 다 내가 산 것이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꽃 화분 하나 때문에 나도(아내도) 모르게 충동구매를 한 게 아닌가 싶다.
마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꽃이 활짝 핀 서양란이 향기가 어찌나 그윽한지 평소에 꽃 화분을 잘 사지 않는 아내와 내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자”하고는 카트에 담았다. ‘긴기아난’이라는 란인데 꽃은 별로 크지 않지만 향기가 장난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향기에 놀라 모두 뒤 돌아보고 매장 직원들도 향기의 진앙인 내가 부러운 듯 일제히 쳐다보는데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무뚝뚝하게 생긴 귀밑머리가 희끗한 남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 아주머니들, “이 향기 여기서 나는 거에요?” “오모나~ 향기 쥑이네요~”
“이거 얼마에요?” “이거 어디에 있어요?”
비구니 스님 한분은 꽃 이름까지 알고 말을 붙여온다. “아~ 긴기아난이었구나~ 저어기서부터 향기가 나더니 여기서 난 거였네요~” 하고 흠흠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이름까지 아는 것을 보니 스님이 화초에 특별한 취미가 있거나 이 화초가 요즘 뜨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꽃 화분 하나는 참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건 사는 게 이득이야~ 가격도 착해서 나는 만이천원에 봄을 산 것처럼 뿌듯했다.
그리고 쇼핑카트를 밀고 가면서, 향기에 취하고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달콤쫄깃 찹쌀호떡 한 팩만 담을 것을 계피호떡 한 팩 더 담고, 가격이 착한 하우스 감자만 살 것을 비싼 고구마도 한 봉다리 담고, 안동식 찜닭을 사며 뼈없는 닭발도 넣고, 페루산 적포도를 사며 생판 첨보는 페루산 스윗 사파이어도 담았다.(스윗 사파이어는 집에 와서 저녁에 후식으로 먹었는데 새끼손가락처럼 길쭉하게 생긴 흑포도다. 그냥 적포도 맛인데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흰다리새우도 사고, 슈퍼대왕마늘빵, 돌김자반볶음, 노브랜드 찰진 순대, 캘리포니아 호두, 남해안 생홉합살, 남해안 생굴, 의령 애호박 2개, 파프리카, 백오이, 시금치, 진라면, 산사춘 2병, 컵라면, 해태제과 골라담기4+1, 구경하다 아내 워킹화도 한 켤레 담고, 내 스웨트, 아내 잠옷...
영수증을 보니 참 많이도 샀다. 장보기 목록을 미리 만들어서 목록대로 샀더라면 반에 반도 안 샀을 텐데 긴기아난인지 긴가민가인지 이름도 헷갈리는 란의 그윽한 향기에 취해 우쭐해진 아내와 나의 네 손이 오바를 한 것이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아내와 나 두 식구 먹을 건데 너무 많이 샀다. 하지만 뭐 이것들은 어차피 다 두고두고 먹을 거니 그렇다 치더라도 워킹화와 스웨트, 잠옷... 먹지도 못하는 이것들은 도대체 왜 샀지? 봄바람 탓인가? 향기 마케팅 탓인가? 지금까지 이런 장보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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