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마을에 욕심 많은 개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길가에 떨어진 큰 고기 덩이를 발견했다. 욕심 많은 개는 이 고기를 혼자 먹기 위해 조용한 장소를 찾아 가고 있었다.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가 우연히 물속에 자기보다 더 큰 고기를 물고 있는 개를 발견했다. 욕심 많은 개는 생각했다. “내 고기보다 더 큰데! 내가 저 큰 고기를 빼앗아 먹어야지” 그리고 물속에 있는 개를 향해 “멍멍멍”하고 짖자, 갑자기 자기가 물고 있던 고기 덩이가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그제야 욕심 많은 개는 물속에 있는 개가 자신이란 것을 깨닫고 후회 했다. 사전에서는 욕심을 ‘무엇을 이루거나 가지려는 지나친 마음’으로 정의한다. 이런 욕심(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단지 욕심의 종류와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란 만 못한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왜 지나친 욕심이 일을 그르칠까? 지나친 욕심은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 또는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SKY 캐슬’은 우리 사회에 많은 이야기와 고민을 던졌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평가한다면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날카롭게 꼬집은 드라마다. 자녀의 성공, 대를 잇는 가문의 명예와 같은 것을 이루기 위해 인간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 시대와 우리 삶을 지적한 것이다. 지나친 욕심은 내 삶의 방향을 잃게 한다. 지나친 욕심은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 어느 방향인지’, ‘옳은 것이 어떤 쪽인지’ 방향 감각을 잃게 한다. 처음에는 의욕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욕망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딱 한 번’이라는 유혹으로, 그리고 얼마 후 한 번의 실수를 숨기고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성과를 놓지 못해 정도(正道)를 잃어버린 채 욕망의 숲에서 방황하게 된다. 2019년도 한 달 보름이 지난 이 시점에 우리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열심과 열정이란 이름으로 나의 욕심을 포장하며 하루하루 살지는 않는지... 역사학자 서여(西餘) 민영규 선생은 ‘떨리는 지남철’이란 시를 통해 “떨림을 잃어버린 지남철(나침판)은 고장 난 것이고,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 떨림은 무지와 불안에서 오는 떨림이 아니라, 正(옳음, 바름) 앞에 서 있는 연약한 인간의 떨림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삶 앞에서 우리는 지남철의 바늘처럼 인생의 ‘옳음’(正)을 향한 가슴 떨림이 있는가?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내 마음의 떨림을 회복해야 한다. 사람을 향한 떨림이 있는가? 자신의 일에 대한 떨림이 있는가? 학생은 학생으로, 농부는 농부로, 교사는 교사로, 공무원은 공무원으로, 기업가는 기업가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종교인은 종교인으로서...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은 ‘서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연약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떨림은 지금도 이 시대와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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