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서너 살 되었던 시절,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가 내 뺨을 핥아주던 기억이 나의 기억창고 어딘가에 아련히 남아있었다. 동물들과 어린 것들에게 늘 자상하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무슨 해괴한 이유로 급사를 해버린 진돗개를 끌어안으시면서 눈물을 적시셨던 기억도 끄집어져 나온다. 축 늘어져 잠든 진돗개를 종이와 천들로 정성껏 감싸서 자전거 뒤 칸에 실은 후, 나를 아버지 앞에 태우시고는 당시 동네에서 멀리 있던 산을 찾아 길을 떠났고 양지바른 한 켠의 땅에 아버지는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으로 흙을 파서 진돗개를 묻어 주셨었다. 나는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찾아 십자가 형태를 만들어 무덤 위에 꼽아 놓고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무덤의 흙을 쓰다듬고 계셨다.
당시 아버지는 어떤 사람들이 개를 잡아먹을 요량으로 작당하여 개를 급사시킨 것으로 추정하셨고 그런 몹쓸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개탄의 한숨을 쉬셨던 것이었다.
산중에 살다 보니,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원 과일나무에 퇴비로 던져 놓다 보니, 딱히 주인도 없이 동네에서 자라고 있는 고양이들 두어 마리가 힐끔 힐끔 우리집 마당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게 몇 년 되었다. 어느덧 고양이 밥과 애완동물용 자동 급식기를 구비하여 배고플 때 기웃거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우연히 서울 서초구 몽마르뜨 공원에 유기된 토끼들을 구조하는 일에 온 정성과 헌신을 도맡아 해 오시는 어느 여성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과 그분의 지인들이 지난 한 해 몽마르뜨 공원에서 구조한 토끼들 수가 100여 마리가 된다는 말씀에 나는 현실감이 생기질 않아 정말이야? 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어떻게 해서 서울 도심의 공원에 그 많은 토끼들이 버려졌던 것일까? 이에는 기가 막힌 사연들이 있었다. 도심의 공원에 귀여운 동물들을 키우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동물과 친근할 수 있는 도심공원 자연친화 낙원만들기 프로젝트? 라는 단순하고 여물지 않은 상상이 내 머릿속에 얼른 들어왔지만, 그 기가 막힌 사연들 앞에서는 어떠한 환상의 여지도 없었다.
사람들이 요 몇년간 귀여운 토끼들을 애완동물로 선호하기 시작했다 - 이러한 유행은 토끼들을 친구끼리 애인끼리 선물로 주고받는 등의 빈번한 매매 행위를 부추겼다 - 중국에선가 어디에선가 아기 토끼들을 생산하기 위해 품종별로 엄마토끼들을 공장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 엄마토끼들은 제왕절개술을 통해 아기토끼들을 낳자마자 바로 강제임신이 되어 또 다른 토끼들을 출산해야 하는 생명이 아닌 상품제조기로 전락되었다 - 출생이 아닌 생산공정(제품제조)의 과정으로 태어난 토끼들을 시장에 방출시켜 마케팅의 대상이자 자본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 토끼 구매자들은 토끼를 건사하고 키우는 일에 이런 저런 싫증과 이런 저런 어려움을 핑계로 몽마르뜨 공원에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허기와 추위에 내버려진 토끼들끼리 번식을 하기 시작했다 - 발견된 아기 토끼들을 누군가 철창에 가두어 두기도 했다 - 토끼들은 헐벗은 채 병을 얻은 채 혹은 부상을 당한 채 공원 내에 사람들이 딱지로 붙인 ‘유기동물’이 되어 있었다. 이런 기가 막힌 사연은 토끼들만의 사연이 아니었다. 다른 애완동물류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사연들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이야기들이 그들의 사연일까? 생명을 유기하는, 생명을 모질게 다루는, 非인간적인, 우리들의 사연 아닌가? 개탄의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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