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겪었던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 이야기 하자면 몇 날 며칠을 해도 모자라지. 나는 얼마나 장사를 더할지 모르지만 전통시장을 많이 이용해 주었으면 좋겠어.” 50년이 넘게 생선과 건어물가게를 하며 원조 지리산함양시장 상인으로 사는 옥계상회 양옥식(76) 씨의 말이다. 양 씨는 지리산함양시장이 시장의 모습을 갖추기 전부터 이곳에서 노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양 씨는 백전면 대안리 대상골에서 5남매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오빠 둘에 남동생이 둘이다. 집안에 남자아이가 귀한 것도 아닌데 부친은 돌림자를 따 남자 이름을 지어 주었단다. 그녀는 대상골에서 19살까지 살다 온가족이 함양읍으로 이사했다. 22살에 다섯 살 위인 병곡면 옥계마을 청년과 결혼해 잠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당시 옥계마을은 함양읍에 비하면 정말 촌이었다”면서 “지금은 지하수도 있고 저수지도 있어 물이 흔하지만 그때는 물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등잔불이나 호롱불을 밝히고 살았다. 마을까지 가기 위해서는 신작로에서 논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마을에 다다랐다고 했다. 양씨 부부는 결혼 3개월 후 분가해 함양읍으로 살림집을 옮겼다. 지금의 옥계상회 맞은편 주택 단칸방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집주인은 건어물과 생선 도소매업을 했다. 양씨 부부에게 창고 앞에서 노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건어물과 생선도 외상으로 대주었다. 외상값은 물건을 팔아 갚았다. 그녀는 “당시 재산이라고는 단돈 10원도 없었다”며 “만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가난한 살림을 많이 원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건 착하고 성실한 남편과 주인집 부부의 배려와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기존의 낡은 상가주택을 새로 지어 점포 한 칸을 양 씨 부부에게 임대해 주었다. 현재 옥계상회 맞은편 미용실 자리가 그곳이다. 비록 임대한 점포지만 노점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가게를 차렸다. 27년 전 지금의 점포를 매입해 이전하기 전까지 20년 넘게 그곳에서 옥계상회를 운영했다. “주인아저씨는 우리 부부가 지금의 점포를 사 옥계상회를 옮겼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며 “윤두(양씨의 남편)가 점포를 사 내가 집을 산 것보다 좋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에 들렀다”고 한다. 양씨는 “주인아저씨도 노환으로 오래전 세상을 떠났고 주인 아주머니도 다른 도시로 이사해 얼굴 본 지가 오래됐지만 고마운 마음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내 점포도 생기고 자식 3남매도 모두 성인이 되고 조금 살만하다 싶었는데 25년전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며 “가난했지만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을 하늘이 무심하게 데려갔다”고 했다. 양 씨는 또 “딸이 대학에 가고 싶어 했지만 형편이 넉넉지 못해 대학을 보내지 못했다.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것과 딸을 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는 “한때는 장날이면 앞치마 양족 주머니가 돈으로 빵빵하게 찼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이제 하루하루가 다르다.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된다. 이러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다 굶어 죽을 판이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전통시장이 침체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군에서 노인정 등에 지원하는 지원금마저 카드 사용을 권장하다 보니 노인정에서도 전통시장에 물건을 사러 오지 않는다”며 “전통시장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물건 구입비는 전통시장 이용권으로 지급해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양옥식씨는 “나이도 있고 아픈 데도 많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전통시장은 사라지지 않고 지켜졌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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