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 번 꽃이 핀다는 산수유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온몸 불사르듯, 마지막 정열과 사랑을 꽃피우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그리움은 꼬리를 물며 더 깊어가고,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사람들 얼굴이 가슴 가득 그려집니다. 오랜만에 김종길 시인님의 ‘성탄제’를 읽으며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떠 올려 봅니다. 손에 익지 않은 농사일과 이런저런 일로 충격 받아 쓰러져 당신 인생을 제대로 한 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셔서, 남은 식구들이 고생을 했지만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니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눈 내리는 산골짜기 겨울밤, “할미 손은 약손” 하시며 머리를 만져주는 할머니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들을 위해 눈 속을 헤치고 산수유 붉은 열매를 따오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옷자락을 부비는 아이,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서 불현 듯 그때의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과 함께 산수유 붉은 알알이 혈액 속에 흐름을 알아가는 서러운 서른 살의 아들.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요즘에야 아버지가 든든한 버팀목으로 친구 같은 존재로 지내야하지만, 예전의 우리 아버지들은 근엄하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지켜만 보시던 아버지들이셨습니다. 대학 휴학을 하고 암으로 투병하시는 아버지를 병간호 하는데 당신의 목숨보다도 보증선 일로 물려주는 빚과 병원비 및 치료비로 떠 안아야할 빚을 먼저 걱정하시며 “황수야 미안하다.”시며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혀집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버지와 스물 한 해 밖에 같이 살지 못했지만 추억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민물고기 조림 좋아하신다고 해질녘 냇가에 아버지랑 낚시도 다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면사무소 출근하시면서 자전거 뒤에 저를 태워다 주시고, 졸업한 날 친구들과 모여 노는 자리에 오셔서 술도 한 잔씩 따라주시고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와 전선야곡’을 불러 주셨고, 동생들과 집안 형편 생각해 아들이 꿈을 접는 것을 술로 달래시던 일 등 지금 생각해보니 제 혈액 속에도 아버지의 붉은 산수유 알알이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이맘때면 김종길님의 ‘성탄제’와 함께 이수익님의 ‘결빙의 아버지’를 읽곤 합니다. 시를 읽을 때마다 ‘아버지! 살아만 계셔도 저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이제야 깨닫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베갯잇을 적십니다. 그러면서 남자이기 이전에 아버지인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 땅에 있는,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아버지들이여 힘냅시다.그런데 어머님/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문득/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주던/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품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아버지.......아버지......// 이수익 ‘결빙의 아버지’ 중어두운 방 안엔/바알간 숯불이 피고,//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어느 새 나도/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성탄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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