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에서의 결정이 의회와 행정부가 아니라 여론과 행정부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즉 여론의 힘이 입법부보다 중요해졌으며 그래서 편파적이지 않은 정보가 중요해졌다” 60년 간 언론계에서 활동한 월터 리프먼의 「여론」의 이 문장은 근대국가 뿐 아니라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리프먼은 1차대전 동안 선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론의 조작이 얼마나 쉬운가를 배웠다고 했다.
여론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된다는 견지에서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편파적이거나 편견과 왜곡에 닿아있다면 위협이 된다. 일반대중들은 보도되는 사건 너머에 우리가 모르는 정황과 진실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보다 비난부터 시작하는 집단적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쉽고 빠른 동조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면서 법의 판결이 나지도 않은 불확실한 시점에서 여론재판을 한다. 리프먼은 “우리는 우선 보고 그 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의부터 하고 그 다음에 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로 한유총과 교육부의 사유재산권에 대한 첨예한 대립을 보면서 “공公과 사私의 경계가 애매해졌다”는 생각이 들던 와중에 한쪽에서는 사유재산에 대한 과도한 제재가 ‘사회주의적’이라 하고 다른 편에서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시위와 성토로 입법에 여론의 뜻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여론의 어떤 ‘힘’을 대중이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어떤 사안에서든 여론의 원천과 여론이 도출되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여론이 기대고 있는 뉴스를 생산하는 매체들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지도 의문이고, 기사답지 않은 기사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도 뉴스에 대한 믿음을 흐리게 만든다. 거기에다 가짜뉴스까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일반대중의 판단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가짜뉴스 사이트인 ‘미국 최후의 보루America’s Last Line of Defense가 “이 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든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는 문구를 14군데나 기록했지만 사람들은 이 문구를 간과했고 미국인들의 머릿속에서 가짜가 진실이 되어 미국인의 사고지형을 만들고 이들의 편견을 강화하고 말았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Eli Saslow의 글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의 심리현상을 증명한다. 이런 현실에서 여론이란 무엇이며 여론은 공명정대한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유총과 교육부의 관련법 해석이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양쪽 모두 유아교육의 본질보다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는 듯 해서 불편하다. 교육부가 폐원에 대한 대응으로 유치원을 1080개 늘린다고 하는데 영·유아의 심각한 감소현상을 반영한 것인지, 공·사립유치원의 교육의 질과 연간 운영시간 등을 상대 비교한 판단의 결과인지 의문이다. 학부모 통장으로 들어 간 지원금을 학부모가 교육비로 쓰면 될 것을 굳이 유치원으로 보내는 방식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공립에서는 누리과정지원금과 유치원 기본운영비의 이중편성 지출로 학습자료 과다구입 현상이 벌어지고, 사립유치원에서는 이를 유용한 곳도 있다고 하니 양쪽 모두 과잉예산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교육부든 한유총이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여론에 기대거나 여론을 이용하려 드는 정치적 판단도 우려가 된다. 이런 기대나 이용이 여론의 조작을 낳고 가짜뉴스를 낳는다. 여론은 편파적이지 않은가? 리프먼은 공중公衆이 항상 옳은 것인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었다. 여론이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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