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 숲의 중간쯤에는 예전부터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 흙을 파내고 돌담을 쌓아 만든 깊은 우물이었다. 주민의 이야기에 따르면,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먹던 물이 차고 맛있었다고 한다. 두레박이 한참 내려갈 정도로 깊어 위천 강물이 말라도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숲속의 깊은 우물은 맑고 시원하다. 표면으로 흐르는 물이 오랜 시간을 두고 땅속 토양알갱이들 사이로 스며들면서 걸러지기 때문이다. 함양은 첩첩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환경이 뛰어나다. 산자락을 따라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상림 우물이 맑고 시원한 이유일 것이다. 물은 어쩌면 음식보다 더 근원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인성 질병을 비롯하여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바로 작용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예로부터 함양은 건강하고 인심 좋은 고장이 되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생명있는 모든 것은 물이 있는 곳에 모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사연도 많다. 그래서 마을마다 우물과 빨래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퍼져나가곤 했다. 농경 생활을 하던 때 마을 우물은 대부분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성격의 우물이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약속의 장소가 되었다. 우물가에서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얻었다. 처녀·총각은 사랑의 눈이 맞기도 하였다. 상림 우물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공동우물이 되어왔다. 어릴 적부터 이 우물을 보아 왔다는 주민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도 있었다고 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항복하자 일본의 속박에서 풀려나 귀향한 사람들이 있었다. 상림 숲속에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오다 보니 15가구 정도 되었다. 초라한 움막을 짓고 30여 년을 살았다. 이 사람들은 물동이로 우물물을 여다 먹었다. 상림에 봄·가을 해치를 하러 오거나, 축구 등 운동하는 사람들도 이 우물을 이용해왔다. 상림운동장에서 천령제나 군민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할 때는 행사장 주변에 옹기를 채워두고 먹기도 했다. 함양의 백전, 병곡 주민들도 걸어서 읍내로 다니던 시절 이 우물을 이용했다. 상림 우물은 언제나 거쳐 가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이곳은 목을 축이고 쉬어가는 곳이면서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상림 우물은 생명수를 공급하는 이외에도 이곳을 거쳐 가는 사람에게 상징적인 공간이 되어왔다. 생명의 근원을 함께 나누는 곳이다. 수많은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스쳐 지나는 핫 플레이스다. 이 우물 곁에는 오래전부터 상림의 숲을 지키는 숲강구(감시원)의 집이 있었다. 여기서 우물을 관리해 왔다. 주변을 청결하게 하는 등 더운 여름날 등목을 하는 것도 금지했다고 한다. 이 우물은 2000년대 초반 함양군의 정비사업으로 뚜껑을 덮고 전기모터로 물을 끌어 올려 약수터가 되었다. 많은 함양읍민들이 이 물을 길어다 먹고 있다. 나도 3년 동안 이 물을 먹고 있다. 이 약수터는 함양상림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갈증을 달래는 생명수가 되고 있다. 예전에는 우물가에 버드나무가 짝궁처럼 나타났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버들잎 하나 띄워서 건네던 멋과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우물도 보기 힘들뿐더러 버드나무도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상림 우물 곁에는 중장년의 암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우물가를 지키고 서서 계절을 알리는 숲의 이정표가 되었다. 어느 가을날 정갈하게 쓸어놓은 약수터 앞마당에 노란 은행잎이 깔리면 발걸음에 사각사각 고운 물이 든다. 이 ‘우물가의 은행나무’는 자리를 잘 잡았다. 깊은 수원지를 갖고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고, 사람들의 관심과 관리도 받을 수 있다. 의미의 큰나무는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만들어진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 한다. 지구상의 97% 물은 바다에 있고 3%만이 육지에 있다. 그중에서 빙하와 만년설을 제외하면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물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물 때문에 고통받는 나라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급격한 세계인구의 증가, 환경오염과 공해는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숲의 파괴로 인한 사막화, 무분별한 물 이용과 낭비도 문제이다. 물 부족 현상은 기근과 질병, 전쟁 등 심각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 맑은 물이 사시사철 나오는 곳은 미래 시대에 커다란 희망이 될 것이다. 상림의 우물은 보물 같은 존재이다. 잘 관리하여 목마른 이들의 가슴을 적시는 치유의 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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