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은 올깎기고 감은 늦깎기라고 한다. 곶감은 늦게 깎는 게 좋다는 말인데 기후 온난화로 요즘처럼 겨울이 따뜻하고 비가 잦으면 곶감이 곰팡이가 피고 제대로 안 마르기 때문에 노련한 곶감쟁이들은 가능하면 날씨가 추워진 뒤에 감을 깎는다. 수년 전 겨울장마로 곶감농가가 큰 낭패를 본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늦게 깎은 사람은 자연재해를 용케 피했다.
올 겨울 날씨는 곶감 말리기에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아직 곶감이 다 마르려면 보름은 더 남았기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구라청의 예보를 그대로 믿어준다면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아 보인다. 지난 번 사흘 비 오고 이틀 또 비가 이어질 때는 잠시 긴장했다. 덕장에 매달린 곶감을 보며 한숨을 짓고 내가 올해 감을 너무 일찍 깎았구나~ 어르신들이 감은 늦깎기 라고 했는데 욕심을 부려 곶감을 많이 깎으려고 일찍 시작한 게 화근이 되는구나...하고 걱정을 했다. 다행히 이어지는 날씨가 화창해서 아무 피해 없이 잘 넘어갔다. 엊그제는 하루 비 오고 그쳤는데 그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 내내 안개가 대단했다. 엄천골의 안개는 보통 이른 아침 엄천강을 따라 피었다가 해가 올라오면 슬그머니 사라지는데 엊그제 안개는 강 주변 산과 마을을 통째로 삼켜 버리는 것이었다. 수분에 예민한 곶감에게 이런 안개는 치명적이라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낫다. 곶감농사는 어쨌든 하늘과 동업하는 것이기에 동업자가 변득을 부리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그날은 곶감 깎는 일을 하루 쉬었다. 읍에 나가 목욕도 하고 소파에 기대 책을 보다가 잠을 잤다. 올해는 부자가 한번 되어보려고 했는데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곶감을 말리는데 중간 중간 이렇게 궂은 날씨가 무조건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맑은 날씨에 말린 곶감보다 한 번씩 궂은 날씨를 겪은 곶감이 맛이 더 뛰어나다. 사람도 시련을 극복한 사람이 인물이 되듯이 곶감도 궂은 날씨를 극복하면서 숙성이 되어야 그야말로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아직 곶감 건조와 숙성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곶감이 성공적이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동업자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해주면 어쩌면 내가 올해는 부자가 한번 되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먹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맛이 좋아야한다. 곶감을 아무리 때깔 좋게 말리고 고급지게 포장해도 맛없으면 말짱 꽝이다. 나는 곶감을 만들며 가끔 남원 운봉에 있는 산채비빔밥 집을 생각한다. 그 산채 비빔밥 집은 우리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에 있는데, 수년 전 맛있다는 소문에 가족이 총출동하여 점심 한 끼 먹으러 일부러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은 점심 한 끼 먹으러 먼 곳에 간다고 가는 내내 투덜거렸는데 막상 밥을 먹고 나서는 달라졌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그 산채 비빔밥 먹으러 몇 번 더 먼 길을 달려갔는데 거리가 멀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산채나물 대여섯 가지에 고추장, 된장찌개, 참기름...뭐 별 거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왜 그 집 것은 그리 맛이 있는 건지 그 노하우를 배워 내가 사는 함양에서 나도 산채 비빔밥 집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사실 별거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나만의 노하우로 곶감을 말리고는 있지만 말이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