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수엔씨는 15년 전에 함양의 잘 생기고 성실한 남자에게 시집와서 딸 둘,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소위 ‘결혼이주여성’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일과 가정에서 자기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대단한 해피엔딩이 기대되는 진취적 여성이다.
관계가 형성되고 연륜이 쌓여 공동체가 생기면 누군가에게는 크고 작은 책임이 지워지게 마련이다. 어려움을 겪는 동포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담도 해주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교육문제 같은 공통관심사나 문화적 갈증, 어린 이주여성들이 당면하는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언니 노릇을 하며 주변을 둘러 볼 줄 아는 의젓한 사람이 수엔씨다.
지난 산삼축제때 수엔씨 자매가 체험존에서 베트남의 음식문화를 선보였다. 명색이 축제위원회 사무국장이었던 필자는 다문화 배려니 군민참여니 하는 상투적 언어를 앞세우며 도와주겠다고 갖은 약속을 했는데, 다른 참가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부스 임대료까지 챙기고는 정작 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급·배수시설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 수엔씨의 따끔한 원망을 들었다.
축제기간 동안 무거운 국통, 물통을 들고 다니느라 힘들었을 터라 내심 미안했는데 다행히도 메뉴가 인기가 있어 짭짤한 매출도 올린 듯하고 가깝고 먼 곳에서 다문화 가족들이 많이 찾아와 자기나라의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축제분위기와 어울려 보기 좋았다.
축제에서의 경험에서 용기를 얻었는지 수엔씨는 오랫동안 꿈 꾸어온 창업을 단행했다. 지난 11월6일 마천사람 수엔 자매가 함양읍 큰길가에 베트남의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걸어 놓고 ‘베트남자매 쌀국수’를 개업한 것인데 훗날 함양의 ‘동남아 여성이주史’가 쓰여지게 되면 아마도 수엔씨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장님이 된 최초의 이주여성사업가로 기록될 것이다.
“원산지가 잘못됐네, 월남쌈과 쌀국수는 국산, 돼지고기와 김치는 한국산이라고 표시해야지.” 썰렁한 농담에 수엔씨가 밝게 웃었다.
수엔씨의 등장을 기다렸는지 문턱이 높아서인지 모르지만 20년이 넘는 이주 역사와 베트남 출신만 200여명을 헤아리는 함양에 여태 쌀국수집 하나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남아 출신의 함양아줌마를 타깃으로 하는 음식점을 왜, 아무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린나이에 이주해 와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그 긴 세월동안 그 많은 다문화정책과 배려와 포용은 어디서 무었을 하고 있었던 걸까? 향수를 달래줄 작은 국수집 하나가 만들어져 그녀들을 위로하게 할 수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은 지나친 감상일까?
다른 환경, 언어, 습속 같은 것에 적응하고 정착하느라 고생하던 수엔씨들에게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큰 걱정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을 반듯하고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건 마음뿐,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의 어머니들과의 경쟁도 겁나고, 한국말 익히기도 버거운데 정보의 홍수 속에 배워야 할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머니 나라를 묻는 아이에게 조국의 말도 가르치고, 문화와 역사도 자랑하고도 싶을 터, 그러고 보니 쌀국수집만 없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소통, 문화·정서적 필요를 채워줄 그들을 위한 그들만의 공간 하나 변변치 못한 것은 단순한 예산타령으로 설명될 일이 아닐 것이다.
함양군이 ‘인구 늘리기 추진 유공 군민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할 정도로 인구감소를 막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 제목이 아니라 결국은 ‘살기 좋은 함양’이 답이다. 소멸을 걱정하는 농촌에는 부지런한 농군으로, 노령화되는 마을에 젊은 미소로, 비어가는 초등학교 교실에 아이들을 보내는 현명한 학부형인 수엔씨들이 자존감을 느끼고 행복해야 살기 좋은 함양이다. 오바한 김에 하나 더, 필자는 다문화나 이주여성이라는 용어도 함양의 우리와 구별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우리가 남이가! 함양사람 수엔씨, 우리 수엔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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