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란 스승의 학문만 배워서 익히는 자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습성과 행동거지나 말투까지도 따라 닮으면서 스승의 분신이 된 자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끊없는 훈련과 노력으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스승의 외형이나 재주를 배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그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양육받아서 완전히 성품이 스승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서 분신이 되는 것이지요. 이 시대에는 ‘선생은 있으되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지만 제자는 없다’라고 탄식의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탓하기 보다는 모두 함께 자각하고 본질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제자의 양육은 먼저 스승이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승이 제자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소위 완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스승은 언행일치로 제자에게 본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인내를 가르치려면 먼저 인내를 보이고, 사랑을 가르치려면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단지 겉으로 보이려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 중심과 올바른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이어야 합니다. 열 마디 말이나 이론적인 설명보다는 한번의 실천이 스승의 권위가 세워지게 합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가 그냥 웃고 넘기기보다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승의 분신이 되기 위해서 양육받는 제자의 자세는 성실과 창의력이라 하겠습니다. 먼저는 스승의 가르침과 양육에 최선을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최선이란 스승에 대한 신뢰심을 바탕으로 열정을 가지고 배우고 끊임없이 훈련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훈련의 시작은 모방이지만 모방으로만 끝난다면 곧 한계점에 도달하고 더 이상 발전이 없이 정체하고 맙니다. 한계점에 머물지 않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의력을 가져야 합니다. 즉 스승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스스로의 창의력을 더할 때에 비로서 올바른 양육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제자는 스승의 분신이지만 보다 발전된 열매가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 미래의 소망을 줄 수 있는 자가 되는것입니다. 필자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자신을 한번 돌아봅니다. 나이나 하는 일에서 스승의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과연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었으며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제자를 얼마나 양육했는가? 스승다운 스승과 제자다운 제자들이 가득한 세상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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