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순은 함양상림의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이다. 상림에는 80여 종의 낙엽활엽수들이 손을 맞잡고 살아가고 있다.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참나무류,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나도밤나무, 사람주나무, 당단풍, 작살나무 등이 있다. 한 나무 한 나무 개성 없는 나무는 없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저마다의 변해가는 얼굴을 주저없이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가을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고 화려하다.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사람들은 흔히 단풍 하면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우리는 모든 나무는 단풍이 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잊고 있다. 그래서 가을이면 눈길을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단풍 명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여행도 좋지만,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갖고 다가서 보면 깊이 있는 가을의 풍성함을 즐길 수 있다. 눈을 뜨고 보면 상림은 소박하면서도 다양한 가을나무 여행을 하기 적합한 장소이다. 숲속의 단풍과 열매 하나에 눈길을 돌려보자.당단풍나무는 햇살에 비치는 단풍의 노랗고 붉은 빛깔이 눈에 띄게 아름답다. 진정한 자연의 단풍나무이다. 팽나무는 밝은 노랑색이 고운 단풍이 든다. 느티나무는 노란 단풍, 붉은 단풍이 든다. 나무가 큰 만큼 가지의 형태에 따른 변화의 빛깔이 다양하게 느껴진다. 느티나무는 작은 가지 끝에 무수한 열매를 맺는다. 콩알보다 훨씬 작고 짱구처럼 뒤틀린 각이 져 있다. 팽나무는 콩알보다 조금 작은 둥근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작은 씨앗 하나가 거대한 나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어릴 때 풀처럼 보인다고 다 같은 존재는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이팝나무의 잎은 생김새의 변화가 심하다. 그래서 노란 단풍의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열매는 쥐똥나무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조금 더 크다. 늦가을이 되면 바닥으로 후다닥 떨어져 내린다. 새들에게는 볼일이 없는 모양이다. 물푸레나무의 열매는 입장이 많이 다르다. 길쭉한 날개를 가진 열매는 가을바람에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다음 해 여름까지 남아있는 것도 있다. 오래도록 씨를 퍼뜨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서어나무는 노란색의 단풍이 참 아름답다. 숲길을 걸으면서 계속해서 마주치는 개서어나무의 황금빛 단풍을 올려다보라. 최치원 선생이 숲에 나무를 심던 금호미가 녹아 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는 숲길 구간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개서어나무는 날개를 단 씨앗이 여러 개 겹쳐서 한송이를 이루고 있지만, 낱개로 떨어질 때는 날개와 씨가 분리될 수 있다. 날개는 씨앗을 날라다 주는 비행장비일 뿐이니 발아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방법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사람주나무의 단풍은 눈에 띄게 아름답다. 잎이 둥글고 원만해서 더 그럴 것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할 무렵 나무 아래 서면 다양한 물감으로 동글동글한 무늬를 겹쳐놓은 색감의 황홀경을 마주할 수 있다. 사람주나무 열매는 3개의 방이 나누어져 각각 하나의 동그란 씨를 담고 있다. 많은 뿌리줄기를 벋는 나도밤나무의 단풍은 수수하다. 멀리서 한 아름의 나무를 보는 매력이 더 있다. 열매는 푸르다가 빨갛게 되고 까맣게 익는다. 과육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새들의 먹이가 된다. 윤노리나무 열매는 가을에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나서도 발갛게 가지에 매달려있다. 해걸이가 심하긴 하지만, 풍년을 만나면 작은 열매들의 군무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타심이 큰 윤노리나무 열매는 겨우내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작살나무와 쥐똥나무는 숲 아래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나무다. 단풍은 수수하다. 하지만 열매는 확실히 제 색깔을 갖고 있다. 작살나무는 보랏빛으로 보석처럼 빛나고, 쥐똥나무는 검게 물든다. 겨우내 제 빛깔을 뽐내며 매달린 채 새롭게 정착할 기회를 엿본다. 느티나무 고목의 가지마다 파란 하늘이 들어오니 가을이 속으로 익는다. 숲길을 걷다가 문득 알록달록 단풍 사이로 뭉게구름 흘러가는 하늘을 보자. 놓을 것은 놓고 챙길 것은 챙기는 자연의 나무들을 보자. 그 속에 있는 나도 보자. 가을은 미련없이 왔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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