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시험)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 수험생은 물론이고, 수험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도 마음이 뒤숭숭하고 착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등학교 3년 과정을 총 정리해서 평가를 받는 시험인데다가 평생을 좌우하게 될 대학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중대한 사건이 터졌다. 서울 시내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S여고에서 시험문제가 유출된 것이다. 해당 학교의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자신의 쌍둥이 딸들에게 사전에 시험문제와 정답을 전달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쌍둥이 자매들은 지난주에 자퇴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서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자퇴서가 받아들여질 경우 쌍둥이 자매는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이 포함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대학 입학의 특혜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의 부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라니 동창생들에게 전가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숙명여고 측에게 자퇴서 처리를 신중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쌍둥이 자매의 자퇴서가 받아들여지면 시험 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지금의 성적을 그대로 인정받게 되고, 차후 법원 판결 이후에도 쌍둥이 자매들에게는 그 어떤 학칙에 의한 징계도 내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경찰은 수능 시험이 치러지는 15일 전까지는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쌍둥이 자매들은 각각 지난 5일과 14일 병원에 입원하면서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 자매의 아버지는 현직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지난해부터 금년 1학기까지 내신 시험문제지와 정답지를 혼자서 수차례 검토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에서는 국가기관에서 주최하는 수능에 비리가 생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숙명여고 자체적인 내신에는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학교 측에서는 최근 학부모들과의 공식 회의 자리에서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학생을 징계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학교 측이 징계 및 성적 재산정(再算定)에 착수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당 학교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 측에서 사법 절차를 핑계로 시간만 끌고 있다면서 2학년 학생 전체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다만 쌍둥이 자매들이 지금의 성적을 인정받아서 대학에 입학했을 경우라도 유죄가 인정된다면 대학 측에서 입학을 취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쌍둥이 자매의 대학 입학 취소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일각에서는 이런 문제로 내신을 크게 반영하고 있는 현행 대학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시 모집 보다는 수시 모집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은 학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런데 학종은 교과 성적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계속되는 입시 비리를 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소 과장된 궤변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것이 아니라 학생이 대학을 선정해서 누구든지 자신의 수준에 따라서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본다. 물론 대학 측에서도 엄격한 학사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적인 죄성으로 인한 범죄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대학입시에 대한 우려는 불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칠정교회에는 인근에 있는 지리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열 명 정도 출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번에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들도 여럿 있다. 필자는 그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면서도 예배 때마다 졸린 눈을 부릅뜨고 필자의 설교를 열심히 들어주는 수험생들이 고맙고 대견하기만 하다. 수능 전날 학교에 찾아가서 해 줘야겠다.
잘못된 부정(父情)이 부정(不正)을 일으키고 만 이번 사건으로 참된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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