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SNS에 포스팅한 글이 재밌다고 책을 한번 내어보라고 친구들이 부추겨줘서 언젠가 책으로 한번 엮어 봐야겠다는 욕심은 있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책이 잘 안 팔리기 때문에 저자가 인지도가 있어 어느 정도 판매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출판사에서도 선뜻 책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그동안 SNS에 포스팅한 글을 모아 책으로 한번 내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뜻밖의 제안이 오니 나는 얼씨구나~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즉시 오케이했다. 그리고 선인세라는 걸 받아먹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단, 책을 내어보라고 부추겨준 친구들과 출판사에 제보(?)를 해준 페친에게 사야 할 술 한 잔 값은 남겨 두었다.) 원고는 이미 보냈는데 원고라는 게 별거는 아니다. 그동안 SNS에 포스팅한 글들을 모은 거다. 출판사에서 책 구상은 끝난 것 같았고 언제 책이 나올까 궁금해 하는데 출판사에서 사진작가와 함께 사진찍으러 내려온단다. 우와~ 책을 얼마나 멋지게 만들기에 전문 사진작가까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경력과 실력이 있는 대표가 운영하는 출판사 (두고 두고 읽히는 책만 출판한다는 올림출판사)라 내심 기대는 했는데 전문 사진작가까지 동원해서 책을 만들어준다니 홋~솔직히 이건 너무 과분한 처사다.
어쨌든 일박이일의 촬영 일정 중에 저자 프로필 사진도 있다고 해서 읍에 가서 머리를 깎고 왔다. 머리를 깎으며 살짝 고민은 했다. 순박한 시골 농부를 찍으려고 내려오는데 내가 괜히 멋쟁이 이발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옛날에 읽은 소설까지 떠올랐다. 화가가 지게꾼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데, 모델료를 받은 그 지게꾼이 멋지게 몸단장하고 다시 나타났다는...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서울에서 사진 찍으러 내려오는 날이 곶감 작업을 시작하는 날이라 출판사에서 원하는 곶감깎는 풍경을 스케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상당히 유감스럽지만 내가 마음먹고 깎은 머리를 전혀 노출 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곶감 작업할 때 모든 작업자가 위생모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들여 애써 깎은 머리를 위생모 속에 완전 감추고 촬영에 임했더니 살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억울하다는 생각은 다음 날 감 따는 장면을 찍을 때도 이어졌다. 사실 감나무 밭에 고종시감은 벌써 다 수확했고 대봉 감은 아직 수확할 때가 멀었기 때문에 수분수로 심은 단감을 수확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로 했다. 장화를 신고 너덜너덜한 밀짚모자를 쓰고 밭으로 가면서 이번에도 애써 깎은 머리는 이 꾀죄죄한 밀짚모자속에 숨는구나 싶었다. 깍지대로 높은 가지에 달린 감을 꺾어 내릴 때 고의든 아니든 모자가 뒤로 훌러덩 벗겨질 때마다 모자가 벗겨졌다는 사진작가의 지적이 이어져 나는 이발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작가는 수리 사진을 찍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수리는 냥작이라는 작위에 어울리게 한껏 위엄을 부리며 다양한 포즈를 연출해주었다. 요즘 고양이가 인기라 고양이 전문 출판사도 있다는데 책의 주인공이 수리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사진작가는 수리 촬영에 몰두했다.
사랑이와 오디도 기꺼운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사진 촬영에 임했다. 마지막에는 나도 모자를 쓰지않고 아내랑 산책하며 마을 풍경 스케치 속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비록 이번에는 모자를 쓰지 않았지만 풍경사진이라 내가 이발을 했는지 안 했는지 구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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