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눈부신 미래’, ‘스마트 디바이스로 더욱 편리해진 삶’ 등은 첨단산업혁명에 붙기 좋은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그 이면은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인간소외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현상인데, 이것은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본질을 경시하는 하나의 인권침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할 테지만,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정보화 사회가 야기할 개인의 정서적 안정에 관한 문제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인 교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인간소외현상은 지양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정신적 건강이 나빠지면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강도 나빠지는(폭력, 강도 등) 연쇄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다만 이 정서적 문제는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당장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는 소외현상은 국가 통계청 자료 ‘정보화의 영향(소외감, 비인간화를 많이 느낄 것이다)’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통계에서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라는 항목에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에 해당되는 사람은 각각 40.6%, 11.8%로, 정보화의 영향으로 야기되는 소외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52.4%다. 즉, 정보화 사회에 대한 소외 현상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계에 제시된 결과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간소외현상에 대해 직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분명한 해결책이 도출되어있지 않고 있으며, 심각성만 느낀 채 내버려두는 경향이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려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에 나오는 인간들처럼 관계가 도태되는 현실이 도래할 것이다. SF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작인 ‘최후의 질문’은 몇 장 분량 밖에 되지 않지만 그 몇 장 속에 몇 세기 뒤의 인류의 미래를 담고 있다. 주요 쟁점은 ‘과연 엔트로피 법칙을 역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AI, 멀티백은 작중 수백 세기가 흐른 뒤에도 이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사회적 기능을 잃어버린 인류의 정신이 우주에서 영원히 소멸해버리자 초공간에 있었던 멀티백이 그제야 ‘빛이 있으라’ 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는 창세기 1장 3절에 나오는 유명한 성경의 구절이다. 즉, 멀티백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나중에는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적 초월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별로 주목받지 못한 아시모프의 단편작이었지만, 이 짧은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문명의 이기에 감사할 것인지, 아니면 정도를 알고 여기서 멈추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확실한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다. 과연 첨단산업혁명이 가져 올 미래는 눈부신 기회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위기일 것인가? 그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인류에게 ‘최후의 질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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