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상림의 숲에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큰 나무는 졸참나무와 개서어나무이다. 이들 나무는 계곡물이 넓게 퍼지는 자연계류의 언덕에 나타나는 나무라고 한다. 백운산에서 발원한 가파른 계곡물은 백전, 병곡을 지나 도천마을 솔숲을 돌아 넓은 하천 습지를 형성하였다. 최치원 선생께서 이 하천 습지의 물길을 돌려 대관림을 만듦으로써 천년이 지난 지금 상림의 숲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게 되었다. 개서어나무를 비롯한 하천 습지 언덕의 나무들은 대관림이 조성될 당시에 이미 이곳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천숲인 상림이 듬성듬성한 자연식생 위에 나무를 보충하여 심는 방법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식물은 이동이 아주 느리거나 거의 없기 때문에 특정한 지역에 나타나는 특정한 식물은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 나타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개서어나무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특정한 식물이다. 오래 묵은 개서어나무가 이렇게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숲은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상림은 천년이 넘은 지금 참나무와 개서어나무가 주를 이루는 숲이 되었다. 이들 나무는 숲이 진화하는 최종단계인 극상림을 이루어 오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숲의 천이과정이다. 상림은 생태적으로 식물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이유, 오랜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숲이다. 이와 더불어 졸참나무와 개서어나무의 생태적 특성과 타고난 개성을 알게 되면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와 밀밭처럼 말이다. 함양상림에 사는 참나무는 4종류로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가 있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는 사는 곳이 높은 산이나 해안가로 자생폭이 넓지 못하다. 내륙에 속하는 해발 고도 170~180m의 상림에서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참나무는 서로 자연교잡을 일으켜 기본 6종 외에 다양한 잡종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잡종강세라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유전자원은 생존을 위한 새로운 능력에 쓰일 수 있다. 이것이 참나무의 무성한 생존과 강인한 생활력을 이끈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대한 졸참나무들의 몸통과 가지의 형상은 상림의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성하고 웅장한 매력이다. 이 매력은 잎을 모두 떨군 한겨울에 중앙숲길을 걸으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웅장한 졸참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단풍은 거대한 지붕이 되어 오솔길을 덮는다. 그 빛깔은 수수하지만, 인생을 관조하는 지천명의 여인이나, 가을 나그네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졸참나무 하면 사람들은 작은 나무로만 생각하기 쉽다. ‘졸참’이라는 뜻이 도토리가 작다는 것이지 나무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개서어나무는 상림숲의 대표종이면서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남원의 행정마을을 지키는 숲을 이루고 있는 서어나무와 구별된다. 4월이면 잎보다 먼저 피어나 아래로 늘어지는 수꽃차례는 수많은 꽃가루를 바람에 날린다. 제 역할을 다 하고 나면 통째로 떨어져 내린다. 수많은 수꽃차례는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 정기를 암꽃에게 전해주었다. 역할을 다한 꽃차례는 희생된 것이 아니다. 분화했던 일부분은 전체로 화하여 다시 하나의 정수(精髓)로 돌아간다. 꽃을 피우는 식물 중에서도 바람을 이용하는 꽃가루받이는 아주 오래된 수분방식이다. 이 방식은 낭비가 심해서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나무들이 풍매화인 것을 보면 똑똑하진 않지만, 꽤 쓸만한 방법 같다. 참나무나 개서어나무처럼 바람을 이용하여 꽃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은 곤충을 유인할 필요가 없으므로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보면 풍매화는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효율을 택하고 있는 듯하다. 짙은 듯 노랗게 물드는 개서어나무의 단풍은 흰 줄무늬의 수피와 어우러져 밝고 화사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가지의 부드럽고 유연한 선은 무척이나 여성적이다. 개서어나무는 자유분방하게 굽은 흰 줄무늬의 수피가 뚜렷한 시선을 끌만큼 아름답다. 이러한 고목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숲은 그 예술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존중 받을만 하다. 한 그루 한 그루 오랜 세월을 이겨온 나무들이 모인 상림의 숲은 다양성의 보고이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마을숲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알면 알수록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우리의 자연문화유산이다. 우리는 자연의 대상과 소통하고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깊이에 닿는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숲과 나무 하나, 풀 하나에 따사로운 눈길을 마주치다 보면 정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이 가을 상림에, 대자연에 정이 깊어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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