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또 자신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며 칭찬할 줄도 알고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범사를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긍정적입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내일을 기약하게 됩니다. 항상 너그러움과 여유를 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낙천주의자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고 자신을 심하게 비하시키며 심지어 학대하면서 스스로를 비관하며 사는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런 경향을 습성적으로 가진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매우 불우한 환경속에서 고독하게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고 귀하여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므로 인해 내면에 형성된 여유로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과 대화하거나 관계를 가지다 보면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알 수 없는 용기와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불어 염려 걱정거리도 사라지고 활기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교제하면서 깊은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인간의 습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을 경시하는 습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자기 과신 내지는 자기 과시의 사람입니다. 이 세대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자신이 좋은 평판을 얻고 아울러 인기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과신하고 노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남에게 돋보이게 하려고 다른 사람을 낮추거나 무시하는 것은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나머지 전체에 대해 바로 보는 평형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독선적인 성향의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독불장군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필자 주변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어떤 문제도 어려워지면서 결국 절망적인 결론에 이르되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사람과는 더 이상 깊은 관계나 교제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자기 과신의 사람 실체는 남을 신뢰하지 못해서 무시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조건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에 대한 진정한 확신감이 결여되어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겸손이 미덕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하지만 옛 속담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벼가 무르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니 잘난 체 하면서 꼿꼿이 서있는 피와 잘 익어 고개를 숙인 벼가 비교됩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귀하고 아름다우며 훌륭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합니다. 피는 아무리 잘난 체해도 귀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과신의 교만보다는 겸손과 포용 그리고 사랑과 칭찬이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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