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자동차 TV광고가 문득 기억난다. 그 광고가 나올 무렵 나는 9인승 갤로퍼를 십년 째 타고 있었는데 그것도 중고를 구입한 것이었다. 무사고 차라고 해서 별로 싸지도 않게 구입했는데, 고장이 잦아 자동차 TV광고에 관심이 많이 갔다. 십년쯤 지난 이야기다. 사실 산골짝에 사는 나에게 비싼 승용차는 언감생심이고 투박한 갤로퍼가 어울리기는 했지만, 자동차 회사에서 왜 비싼 돈을 들여 광고를 하겠는가? 광고를 보니 터무니없게 나도 좋은 차를 한 대 사고 싶었고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고급차로 대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서울 사는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하고 주말에 놀러오겠다며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길래 나는 새로 산 알루미늄 지게로 대답했다. 내가 귀농하고 제일 먼저 구입한 지게는 철로 된 것이라 자체 무게가 제법 나갔다. 게다가 몇 년 쓰다 보니 녹도 쓸고 영 맘에 안 들었는데, 가볍고 녹이 쓸지 않는 알루미늄 지게가 나왔기에 얼씨구~나 하고 새로 구입한 것이다. 새 지게는 마음에 쏙 들었다. 비록 타고 다닐 신형 승용차를 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메고 다닐 지게만큼은 최신형으로 구입한 것이다.
시골 살려면 지게가 필요하다. 지게는 내가 땔감을 하러 산에 다닐 때, 또 솔잎 순을 채취하러 산에 다닐 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무겁고 투박한 철로 된 지게를 메고 다니다 가볍고 녹 쓸지 않는 고급지게를 메고 다니니 기분은 새 차를 한 대 뽑은 것 같았다. 새 지게로 나는 일도 많이 했다. 특히 그 해 나는 솔 순을 채취하여 효소를 담았는데 가벼운 새 지게 덕분에 두 번 나를 거 세 번 나를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알루미늄 지게를 팔았다. 십년이 지났지만 새 것처럼 깨끗했다. 그랜저를 사는 기분으로 구입해서 잘 쓰던 건데 이번에 팔게 된 것이다. 지게는 연식이 좀 되긴 했지만 수리 한번 한 적 없는 완전 무사고다. 다만 내가 연식이 좀 되다보니 힘이 부쳐 지게를 지지 않게 된 것이다. 지게를 구입한 그 해 나는 솔잎을 참 많이 채취했다. 이웃 할머니가 여름 음료로 좋다고 장독 가득 담는 걸 보고 배워 나도 이게 농가 소득이 될까 하고 잔뜩 담았는데 판로가 없어 그 해 한 해 담고 말았다. 십년이 다 되가는 그 효소는 친지들에게 선물로 돌리거나 가족의 여름 음료로 잘 먹고 있다. 그리고 벽난로에 들어가는 땔감도 이제는 산에서 주어 나르지 않고 쪼개놓은 참나무를 사서 쓴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이제 시골살이가 게으름도 나고 연식 핑계로 그냥 잘 쪼개놓은 참나무를 돈 주고 사서 쓴다. 지게를 팔면서 최근 몇 년간 안 쓰고 창고에 잠자던 엔진톱도 처분했다. 엔진톱을 처분하면서 창고에 잠자던 계륵같은 물건들을 같이 처분했다. 예초기는 두 대였는데 안 쓰는 한 대를 처분했고 굴러다니는 작업대차, 채반, 곶감행거 등등 싹 정리했다. 안 쓰는 거 정리하니 속이 다 시원하고 좋지만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거 같아 섭섭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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