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의 유진초이와 고애신의 로맨스는 대한제국의 정치적 상황을 묶지않고 설명할 수 없다. 고애신의 존재는 유진초이가 등을 돌려야만 했던 조국을 다시 품을 수 밖에 없는 장치이며 그래서 유진초이에게 고애신은 조선이다. 구동매와 김희성 역시 조국에 대한 적의와 외면의 눈길을 거둘 수 밖에 없었던 근거는 고애신에 있으며 그것은 고애신의 의병 활동과 인간에 대한 인간다운 시선에 기인한다. 세 남자가 연적이면서 서로에게 우호적인 이유다. 이 드라마는 구한말의 불평등한 신분제도와 위정자들의 천박한 매국의 과정, 친일의 파렴치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층민은 의병을 조직하고 나라를 위하여 ‘아무개’로 목숨을 걸지만 높은 신분의 대신들은 개인의 입지와 부를 위하여 매국과 친일에 편승한다. 고종은 정치적 상황에 몰려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무능함을 스스로 탓하면서 풍전등화의 조선의 운명을 통탄하며 의병에 기대지만 결국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폐위의 비운을 맞는다. 시청자의 분노는 고종의 폐위와 정미칠적과 을사오적의 등장으로 폭발했다. 일제의 잔학무도함과 매국노의 천인공노할 악행이 네티즌들의 애국심을 일으키고 일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매국노와 일본에 대해 너무 너그러웠다고 자성하고, “헬조선이라 하지마라.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고 일갈했다. 학교의 역사교육은 공허했으나 드라마는 몇십 배의 교육적 효과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방탄소년단(BTS)의 팬덤, 아미는 BTS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일본의 우익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와 협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아미는 “한국이 일제치하에서 일본에게 받은 피해를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협업을 중단하라는 강력한 요청과 함께 협업을 강행할 시 불매와 음원 스트리밍부터 V앱 콘텐츠 소비 등 전면 보이콧을 추진하겠다는 강경한 의사를 밝혔다. 빅히트는 4일 만에 협업을 취소했으나 네티즌들은 빅히트에 대해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역사의 이면을 소설로 배웠다. 강신재의 <임진강의 민들레>, 최인훈의 <광장>은 6.25의 이면을,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여순·순천사건에서 6.25까지를, 조정래의 <아리랑>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고난의 역사를 12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서술했다. 이 외에도 많은 소설들이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중과 밀착되어 즉각적인 교육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다. 드라마는 불특정다수가 동시간에 시청하므로 파급력이 크다. <미스터 션샤인>은 넷플릭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동시 방영되고 있어 일본의 조선침략의 만행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효과도 있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동북아시아의 작은 분단국가가 끈질기게 살아남는 저력에 대해, 또는 그 저력의 바탕이 된 이름없는 민초들의 애국과 희생에 대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일본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는 알게 될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고귀하고 위대한 자, 유진 초이의 먹먹한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며 끝났다. 때마침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여하는 일본의 욱일기 게양을 반대하여 ‘불참’을 유도한 것도 어쩌면 <미스터 션샤인>과 맞물려 더욱 거세진 것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곳곳에서 펄럭이던 욱일기에 시청자들의 분노도 함께 펄럭였을 것이다. 매국과 애국의 과정을 보면서 현재를 직시할 줄 아는 것은 기본적인 역사의식이다. 어느 네티즌의 “학교교육에 이 드라마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은 뼈아프다. 학교가 일깨워주지 못했던 역사의식을 한편의 드라마가 일깨웠기 때문이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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