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호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전국에 많은 비가 쏟아졌다. 때마침 가을 축제가 한창인 기간이라서 행사 주관자들이나 행사장 주변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이번 태풍이 꽤나 야속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을비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짓궂었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태풍은 주말에 발생해서 모처럼만에 경기 특수를 노렸던 사람들에게 더욱 난감함을 안겨 주었다. 일반적으로 태풍이 올라오면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도시나 농촌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 추수를 앞둔 농촌에서는 자식같이 키운 한해 농사를 막바지에 망치게 되어서 들녘을 바라보는 농부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관개수로의 정비로 예전 같은 큰 물난리는 적어졌지만, 그래도 태풍이 남기고 간 상처는 곳곳에 남게 마련이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짧은 시간에 쏟아지는 비의 양이 엄청나서 ‘물폭탄’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요즘은 여름 태풍보다는 가을 태풍의 위세가 더 대단하다. 그래서 결실기에 있는 농촌에서는 상실감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어찌하랴? 자연 앞에 우리 인간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니 말이다.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칠정교회는 언덕배기에 있어서 비가 많이 와도 상관이 없지만, 교회 앞을 흐르는 덕천강 둑에 나가보면 시뻘건 흙탕물이 장난이 아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대피 방송이 들리면 거대한 물살에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창밖에서 밤새도록 굴렁굴렁거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면 간밤에 지나간 태풍으로 쓰러져 있거나 아직 물에 잠긴 논에서 추수를 기다리는 나락들의 자맥질이 힘겨워 보인다. 경기도 김포가 고향인 필자는 어렸을 때 선친께서 비 온 뒤에 아침 일찍 삽 한 자루를 들고 논에 나가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장마철에는 어레미를 들고 나가서 미꾸라지를 잡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태풍이 강하게 불어 닥치면 물에 잠겼던 벼들을 일으켜 세우고 터진 논둑을 손질하기에 바빴다. 우비나 우산도 없이 비를 흠뻑 맞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웃통을 벗어 제끼시고는 펌프 앞에 두 팔을 뻗어 엎드리셨다. 어머니는 마중물을 한 바가지 펌프에 들어부으시고는 열심히 펌프질을 하셨다. 필자는 아버지의 등허리를 밀어드리면서 마냥 재미있어했다. 땀에 범벅이 되신 아버지의 등은 비누칠을 하지 않아도 미끌거렸고, 소가죽처럼 마른 아버지의 앞가슴으로 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비에 젖은 논길을 걸으셨던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에는 온갖 풀씨들이 가득 묻어있었다. 고무신을 물에 씻어서 마루 끝에 엎어 놓으시면 다 닳은 고무신 바닥이 애처로워 보였다. 열 살 무렵 6.25 전쟁통에 부모님을 다 잃으시고 홀로 사시는 먼 친척뻘 할머니에게 양손주로 들어가 사셨던 아버지는 열아홉 살에 두 살 많은 어머니를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셨다. 스무 살에 필자를 낳으시고 바로 군대에 입대하셔서 운전병으로 복무하셨던 아버지는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가을, 마흔여섯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양력 시월 9일 아버지 기일이 되면 낡은 앨범 속에 소년처럼 하얀 얼굴로 웃고 계시는 아버지 사진을 꺼내본다. 글재주도 제법 있으셔서 ‘새 농민’이라는 월간지에 글도 써서 보내셨고, 그 당시엔 생소하기만 했던 비닐하우스도 손수 만드셔서 이른 봄에 채소를 생산하기도 하셨던 아버지는 슬하에 삼형제를 남겨 두시고는 태풍에 쓰러진 나락처럼 힘없이 쓰러지셨다.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그루터기에선 다시 새싹이 올라와서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필자의 작은아들은 스물여섯 나이에 벌써 장가를 갔다. 경영학과 ICT 융합을 전공을 하고 있는 작은 아들은 대학교 4학년인데 일찌감치 창업을 했다.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학사장교로 임관해서 중위가 되었다. 대학교수가 꿈인 큰 아들은 2020년 6월에 제대를 하면 바로 대학원에 복학을 해야 하고, 유학도 다녀와야 한다. 갈 길이 멀지만 착실하게 계획을 세워서 잘 준비하고 있다. 필자의 아내가 지난 3월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것을 제외하면 태풍에 쓰러지신 선친께서는 꿋꿋하게 살고 있는 자식들을 보시면서 고맙게 여기실 것 같다. 이제 아내에게 불어 닥친 태풍이 문제다. 시골교회에서 목회하는 남편을 도와서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느라 직장생활을 하다가 뇌출혈이라는 태풍으로 회복이 힘든 상태에 놓여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몇 번씩은 태풍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마다 태풍 앞에 힘없이 주저앉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풍이 지난 후에 더 강하게 일어선다. 경기 침체에 빠져있는 요즘,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도산 소식을 들으면서 그 분들에게도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냥 태풍이 지나갔거니 생각하면 못 이길 것이 있겠는가? 어쩌면 태풍 때문에 오염되었던 자연이 더 깨끗해지고 더 맑아지고 더 푸르러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생채기도 남겠지만, 젊디젊으셨던 아버지의 청춘 같은 새로운 희망이 지리산자락에서 활짝 피어나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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