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이었나? 달이 반토막이던 어느 날 저녁, 내가 강호를 떠돌다가 산책중인 부부를 우연히 발견하고 마법을 걸었다. 부부의 발목에 목덜미를 비비며 갸르릉 거렸는데, 마법에 걸린 부부가 당황해하며 “아니 고양이님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 날이 곧 어두워질 텐데... 근데 세상에나~ 냥이님은 배가 왜 없으세요? 뼈가 앙상하게 만져지는군요. 일단 오늘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하는 거다. 나는 “야옹~ 뼈가 만져지는 거는 내가 뼈대 있는 집안의 후손이라 그런 거고, 일단 오늘은 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모시는 방향으로 한번 연구해 봐바~ 나 절대 까탈스런 냥이 아니니까~” 하고 한껏 위엄을 부렸다. 갸르릉 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거다. 사실 그 때 나는 상당히 꾀죄죄했고 배도 너무 고팠다. 며칠 째 먹지 못했더니 고양이의 존엄성 따위는 개뿔, 개밥이라도 먹고 싶었다. 과연 순박한 부부가 자기들이 사는 집으로 나를 모시고 개밥을 한 그릇 내오는데 내 신세가 참으로 한심해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체면 따위는 개한테 줘버리고 앙앙 소리까지 내어가며 개밥에 달려들었다. 며칠 후 난 싫다는데 집사가 무조건 억지로 강제로 나를 병원에 델꼬 갔다. 건강검진 해얀다고. 나? 건강한데?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데? 우다다다 한밤중에 운동도 열씨미 하는데? 고양이가 그 정도면 됐지 도대체 뭘 더 원하는 거야? 유집사 그래 안 봤는데 증말 배신감 느낀다. 그래 난 생각 좀 해볼 거야 각오해~ 당분간 쌀쌀하게 대해줄 거니... 차는 기분이 좋아 갸르릉 거렸고, 나는 기분이 안 좋아 구슬피 울었다. 난 차를 타는 게 시르다. 냐오옹~냐오옹~ 세상에 어느 고양이가 이토록 구슬픈 연기를 해낼까? 하지만 집사는 건장한 아들까지 동원하여 나를 강제로 억지로 무대포로 델꼬갔다. 나는 결연하게 반대했다. 트럼프씨의 무역전쟁에 반대하는 시진핑씨처럼 말이다. 나는 집사가 만든 종이박스 이동장을 뚫고 나와 차안을 빙빙 날아다녔다. 나는 차를 타는 게 시르다~시르다~하고 시위를 했더니 얼이 나간 집사가 아들의 티셔츠 속에 나를 가둬버렸다. 나는 볼륨을 올리고 최대한 구슬프게 울었지만 집사의 마음을 돌리고 차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결연했지만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집사의 결심도 단호했다. 의사집사가 나를 보자마자 수컷 3개월이라며 내 여권이라도 본 것처럼 선언했고 유집사는 뒤로 넘어갔다. 여태 나를 2개월짜리 오징어로 알고 있었다는 거다. 헐~ 내가 아무리 길냥이라지만 고양이의 성에 대한 인간의 무지함이라니? 당황한 집사가 나를 뒤집고 어딨어 어딨어 하며 그것을 찾는데 이거 참 참 민망하구로 유집사는 수코양이가 딸랑딸랑 소리가 날 정도로 큰 방울을 달고 다니는 줄 알았나 보지? 개처럼 천박하게 말이다. Anyway, 나는 원치 않는 1차 백신을 맞았고 심장사상충, 구충을 했다. 어리석은 집사에 반해 나는 품위있게 처신 했다고 의사집사가 간식을 한보따리 진상했다. ‘멍멍아 야옹해봐’에서 이동장도 하나 사고, 스크래쳐라는 것도 하나 사가지고 왔지만, 집에 와서 심술이 난 나는 소파만 박박 긁었다. 집사는 집사대로 밀린 일을 하느라 얼굴보기 힘들었다. 감이 익어가니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뭐야? 나도 기승전감?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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